매일신문

95 놀란 한해-대북관계 혼선

95년 한반도 기상도는 잔뜩 흐렸다. 남한 주도로 양측간 빈번한 접촉이 있었으나 지난 12일 대북 경수로 공급협정 타결로 겨우 한가닥 햇살이 비치고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남북간 긴장감은 팽팽하기만 하다.지난 1년여간 남북 접촉의 주매개체는 북한 수해에 따른 쌀 지원과 경수로공급건이었다.

특히 쌀 지원은 동포애적 차원에서 돕는다는 취지에서 제의됐고 북한이 이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김일성 사망이후 얼어붙은 남북 대화의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결정 및 추진 과정에서 정치적인 논쟁에 휩쓸렸다.충분한 여론수렴이나 국회동의 절차없는 혼선에다 졸속까지 범하는 정책을 노정했기 때문이다.

첫 쌀 회담이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6월초에 열렸으며 선거이틀전인 25일서둘러 쌀 수송선을 출항시켰다. 당초 쌀 지원 문제는 지난 3월 김영삼 대통령이 독일방문중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지원의사를 처음 밝혔으나 북측이 거부의사를 표시했었다. 그러나 3개월후 일본이 대북 쌀지원 용의를 표명하자이에 편승, 급작스레 북경에서 쌀 회담을 가지게된 것이다.또한 주무부처인 통일원이 회담과정에서 소외됐으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여권내 핵심부가 개입했다는 시비가 제기됐다.

게다가 쌀 수송선의 첫 출항을 전후해 야당측이 '선거전략용'이라고 맹비난하는 가운데 김대통령은 오히려 "외국쌀을 사서라도 주겠다"고 한 술 더떠 정국은 온통 쌀 논쟁으로 뒤덮였다.

쌀회담을 위해 마주앉은 남북 대표들 역시 동상이몽이었을 뿐이다. 남측은쌀회담을 당국자간 공식 회담으로 성격을 규정, 경제협력 등 전반적인 문제들을 다루려고 한 반면 북측은 쌀논의에 국한, 그것도 민간차원의 접촉으로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 파행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평양측이 한국 선원의 청진항 촬영건으로 쌀 수송선인 삼선비너스호를 억류하는 한편 인공기까지 강제 게양케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서울측은 이 사태에 대한 북쪽 주장에 대해 양보로 일관, 가뜩이나 호된여론을 더욱 달구었다. 이 사태후 북측이 사과를 표시하자 기다렸다는 듯 즉각 쌀제공을 재개했으며, 북측주장대로 지원 쌀에대해 원산지 표시를 하지않고 선원들의 신변보장에 대해서도 서면이 아닌 구두 합의에 그쳤다.대북 경수로 지원 문제는 15일 완전타결이 공식발표됐으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멤버인 한국 일본 미국과 북한간에 1년2개월여간이라는 지리한협상끝에 도출된 만큼 '완전한 상황끝'이 아니라 언제든지 불협화음이 터져나올 수있다.

물론 이번 협정 서명으로 북한 핵위협에 대한 국제적인 '족쇄'는 일단 채워진 셈이 됐다. 북측은 경수로를 공급받는 대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임시,일반사찰 재개 △ 핵확산금지조약 잔류 △ 핵 동결 및 해체 등 핵 활동과 관련된 의무사항들을 떠안게 됐다.

그러나 이번 협정 체결의 기초가 됐던 북한 미국간 제네바 협정이 94년10월 체결된 이래경수로 공급 범위 비용 상환조건 운송통로 등 쟁점을 놓고지리한 줄다리기를 해왔다.

때문에 타결 내용이 순조롭게 이행되기 위한 최대 관건은 '돈문제'란 점을염두에 둘 경우 앞날은 결코 밝지 않다. 특히 미국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적은 지원액을 밝히고 있어 결국은한국측 부담만 더욱 증가, 추후 여론 향배와 국회 동의 과정에서 파란도 예상된다.

이번 타결 내용을 보면 공급범위의 경우 최대 쟁점인 송배전시설 설치는일단 배제키로 하고 추후 이에 필요한 비용을 융통할수있도록 KEDO가 국제금융기관의 상업 차관을 주선해주기로 절충했다. 그러나 북한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감안할 경우 결국은 KEDO가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상환 조건에 있어서도 '3년거치 17년 무이자 분할상환'이란 파격적인 것이었다.경수로 비용 분담에 있어서도 한국 정부는 60~70%정도 맡을 각오를 하고있다. 그러나 미국이 당초보다 훨씬 적은 액수의 지원의사를 밝혀 한국측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최소한 총 비용 45억달러중 10%이상은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2천2백만달러정도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한국은 예상했던 2조~2조5천억원보다 훨씬 더 떠맡아야하게 됐다. 2조원만 국민 1인당 부담액으로 환산해도 5만원정도다.

결국 한국은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할 지경이지만 남북대화가능성은 아직까진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지난 7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북남 대화의 분위기가 마련돼있지 않다"며 "남한에는 대할 상대자가 없다"고 대화부재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했다. 또 "미국이 진정으로 우리와의 관계개선의지가 있으면 북남 대화를 조건으로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또한 최근 북한은 군부가 김정일을제치고 권력을 장악한채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최전선에 비행기 1백여대를 갖춘 3개 비행장과 중화기를 배치해놓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협정에서경수로를 한국형으로 제공한다고 명문화한 이상 양측간 대화의 '기회'는 자연스레 열리게 된다. 물론 결실 여부는 별도 문제다. 통일원 관계자는 "북한은 핵문제 해결과 관련,경제적인 이득만 관심을두고 있을 뿐"이라며 "남북 관계개선에 대한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올 한해 남북한은 분주했음에도 불구, 결실은 별로 얻지 못했다.〈서봉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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