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대붕의 큰 뜻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스테디셀러에 속하는 삼국지에는 제갈공명이 출사를 앞두고 "봉황이 머무름이여, 오동이 아니면 깃들이지 않는도다"라고 자족하는장면이 나온다. 그이래 이말은 동양 문화권의 지식 엘리트들이 평생을 두고명념했던 화두였다.동양문화권의 화두

선비의 드높은 뜻을 대붕의 큰뜻에 비유한 이말은 아무리 벼슬길이 좋더라도 잡식성으로 할짓, 못할짓 가리지 않고 해대서 부귀영화를 누리느니 차라리 초야에 묻히겠다는 고매한 인품의 표현이었다. 또 그것은 세속의 명이와사사로운 은원관계를 떠나 청사속에 영원히 살아남기를 원하는 마음, 다시말해 한번 깃을 펼치면 9만리 장천을 날아 넘는다는 '대붕처럼 높고 큰뜻', 바로 그것 아니던가. 이순신의 삶이 그랬고 김구가 그러했으며 드골의 일생이또한 그랬던 것이다.

이들처럼 항심으로 나라 사랑하고 이웃 걱정하는 마음으로 오랜 세월 올곧게 살면서 민초들의 검증을 거칠때 거기에는 범접할수 없는 힘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권위'이다. 이 권위야말로 민주국가에서 민중을 이끌수 있는 큰 힘인 것이다. 군사정권의 힘이 총칼에서 나온다면 민주국가의 리더십의 원천은 바로 이 힘, 즉 검증받은 지도자의 권위에서 비롯된다 할것이다.

요즘 우리사회의 근간이 크게 흔들리는듯한 느낌도 따져보면 지도계층의권위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 할것이다. 국가를 지탱하는 큰 기둥이랄수 있는 검찰권이 이랬다 저랬다로 만신창이인가 하면 헌재 또한 권위있는 명쾌한모습은 아니었다. 정치권이야 뒤죽박죽의 이전투구장이 된지 오래인데다 이제는 재계의 지도계층인 재벌 총수들까지 피고인석에 줄줄이 앉아 있으니 이나라 지도계층이 갖고 있을 최소한의 권위이나마 어디서 찾을것인지 막막하다.

또 하나의 독선 혐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의 큰 고리는 마땅히 단죄 당해야할 쪽이 자신의 죄과에 승복치 않고 칼자루 쥔 쪽에 맞서 "당신네가 감히 심판할 자격이있느냐"고 항변하는데 있는것도 같다. 이른바 '구국의 결단'이란 미명아래 3당이 합치면서 당연히 했을수 밖에 없는 5.6공 세력에 대한 사후 보장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국민적 갈등의 원인이 되어대통령의 권위에 손상을 주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역사 바로잡기를 시작하는 대전제로서 김영삼대통령은 5.6공 세력과는 합당을 포함한 어떤 거래도 거절하고 자신의 힘으로 대권을 쟁취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또 백보 양보하더라도 집권하면서 곧바로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섰어야 했던것이다.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집권후 2년이 훨씬 지난 어느날 갑자기 심판의 칼날을 가차없이 휘두르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많은 국민들이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공감하는 한편으로 '역사'와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또 하나의 독선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혐오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에 대한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우리는 지금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몰락에 비견될만큼 지도적 엘리트계층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고 있다.

정치권이 그렇고 행정부와 사법부, 재계 또한 고개를 쳐들지 못할만큼 수모를 겪고 있다. 언제 우리나라 지도계층이 남의 나라처럼 존경의 대상이 된적이야 있었으랴마는 그래도 설마설마 했던것이 지난 1~2개월 사이에 까발기고 찢겨져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역사적 단죄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피아간에 이처럼 철저하게 권위가 박살난 지도계층을 이끌고 어떻게 역사를 바로잡고 경제를 살려 세계속의 한국으로 자리매김시킬 수 있을는지 답답하기만하다.

국가지탱의 큰기둥

역사바로잡기가 혁명을 뜻하는것이 아닐바에야 국민을 이끌어나갈 최소한의 권위만이라도 남겨두었으면 싶은 것이다.

다시말해 준엄한 심판과 함께 감쌀것은 용서하는 화해의 몸짓을 병행해서한시바삐 사태를 매듭 짓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도 든다.3당 합당으로 태생적인 부담을 안고 있는 신한국당(민자당)이 스스로 갖고있는 권위의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바로잡기만을 고집할때 이에 맞서는 항변과 더욱 강도높은 질책으로 정국이 수렁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는지도 모를일 아닌가. 〈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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