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5 놀란한해-전직대통령 구속, '비자금'에 '5.18'태풍

온 국민은 18일 헌정사상 유례없는 수의차림의 전직대통령 법정모습을 참담한 심정으로 목도했다. 우리는 곧이어 또한명의 똑같은 전직대통령 모습을지켜봐야 할 처지이다.외국언론들도 연일 두 전대통령의 구속을 대서특필하며 한국의 과거청산에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노씨 비자금 스캔들로 시작된 사정태풍이 갈수록 기세를 더해 정치권의 소용돌이는 점입가경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노씨의 부정축재는 79년 12.12군사반란으로 정치권 전면에 등장한 신군부세력의 부도덕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검찰의 구속영장에서 나타난노씨의 범죄사실은 대통령 재임중 30개 기업체대표들로부터 2천3백58억9천6백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노전대통령의 수뢰액수가 재임중 조성한 비자금 5천억원의 절반가까이가뇌물이었다는 사실이 검찰수사에서 입증됐고 부동산투기 및 율곡비리 등 방산업관련 커미션수수까지 드러나는 등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심지어는 노씨가 비자금을 해외로 도피시킨 혐의까지 점차 드러나 검찰이스위스은행에 대한 계좌여부를 추적중이다. 비리 행태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노씨의 구속은 전두환전대통령의 구속까지 몰고왔다. 12.12,5.18의 주범으로 반란수괴혐의 등 6개죄가 적용된 것이다.

전씨는 지난79년12월12일 노태우 당시 9사단장 등 신군부장교 33명과 공모,최규하전대통령의 사전재가없이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연행한뒤 5천여명의 병력을 동원,육군본부와 중앙청 등을 장악,군권을 탈취한 혐의다.

전두환전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는 군사반란및 내란혐의 뿐 아니라"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는 전씨 비자금계좌 1백83개를 추적,개인비리를 캐는 한편 측근의 비리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12.12 및5.18사건에 대해 전씨는 단식으로 대응하면서 당시의 행위는 정당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열쇠를 쥐고 있는 최규하전대통령도 좀체 입을 열려고 하지 않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이 '5.18'문제를 전직대통령 구속이라는 카드를 꺼내 정면 돌파할 것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김대통령은 그동안92년 대통령선거 과정과집권이후 여러차례 5.18문제에 대해 역사의 심판에맡기자고 호소해왔다. 3당합당을 통해 집권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이다.김대통령이 정치적 모험을 넘어서 혁명과 다름없는 초강수를 쓰게 된 배경을 두고도 설이 구구하다. 김대통령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과거청산작업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역사바로잡기라는 명분과 부정축재 척결이라는현실보다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의심하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두 전대통령의 구속은 군부출신 역대대통령들의 도덕성마비를 단죄하고 군인정치의 종식이라는 선언적 의미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외국언론이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수감을 두고 '전두환전대통령이 구속된 2일은 민주주의의 정착을 향해 또 하나의 진통을 맞이한 한국을 상징하는하루였다'는 평가는 한번쯤 되새겨 볼만하다.

건국이래 처음인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은 우리의 통치구조-권력이 얼마나부정한 일을 저질러 왔으며 부패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우리는 헌정이래 온전한 통치권자를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다.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4.19로 하야,망명했고 윤보선대통령은 5.16으로 물러났으며 박정희대통령은 18년간 장기집권끝에 수하에게 시해당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에 의해 밀려났고 전두환,노태우 양 대통령은 구속수감되는 치욕을 당하고 있다.

외신에 양 전직대통령의 구속 사실이 크게 실리고 TV화면을 통해 전달되면서 국가위신은 떨어질대로 떨어졌다. 또 이로 인해 법질서와 사회기강과 도덕을 붕괴시켰으며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말았다.

전직 두 대통령의 구속은 여러면에서 교훈을 주고 있다. 진실은 영원히 은폐할 수 없으며 대통령 및 정치지도자는 재벌과 정경유착을 해서는 안된다는사실,대통령이 뇌물로 받은 자금의 축재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그리고 어떠한 정치인도 부정한 자금으로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또 부당한 방법의 권력찬탈은 언젠가는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점도 명심해야 하고 더이상 군인에 의한 '철권정치'는 이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왜곡된 헌정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언젠가 한번은 딛고 넘어서야 할 우리모두의 아픔이지만 정치적 흥정이나 정치보복의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는 지역여론도 만만치 않다. 역사의 불행한 사태는 이번 일로 모두 마무리짓고 남북통일과 국가발전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홍석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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