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2.12재수사 '새로운 사실'

검찰은 21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12.12와 관련 군사반란의반란수괴 및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했다.검찰은 특히 지난 94년 12.12사건에 대한 수사당시 전.노씨에 대해서는 서면조사를 실시했던데 비해 이번엔 직접조사를 벌인 결과 지난해 10월의 검찰수사결과 발표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사실들을 새로 밝혀냈다고 말했다.◇12.12 모의과정

지난 79년 12월 7일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은 외박을 나와 곧바로 보안사령부를 방문,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함께 10.26사건 수사실무자들로부터 수사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승화 육참총장을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조사키로 하고 조사일을 12월 12일로 정했다.노씨는 이어 전두환보안사령관과 함께 논의한 결과 자신이 황영시 1군단장에게 연락, 12월 12일 경복궁에 오도록 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전씨가 연락키로 했다.

◇경복궁내에 위치한 30경비단 모임의 중요성

12.12거사의 지휘부로 활용됐던 수경사 30경비단의 중요성이 이번에 새롭게 밝혀졌다.

30경비단은 유사시 상대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인적, 물적준비가 잘 갖춰진 부대로 가히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지고 있는 곳.

더욱이 30경비단 상황실은 12.12 당시 보안사 상황실과 함께 신군부측에의해 활용됐는데 30경비단 상황실은 첨단 통신장비가 구비돼있어 어느 부대와도 통신할수 있으며 이같은 점이 12.12 당일 신군부측이 사태를 장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더욱이 청와대 경호임무를 맡고 있는 30경비단은 업무와 위치의 특성상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가령 30경비단의 직속상관인 수경사령관도 30경비단을 방문하기 위해서는별도로 청와대 경호실장의 사전허락을 얻어야 했을정도.

이처럼 출입이 까다로운 수경사 30경비단에 12월 12일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1시간여동안 10~11명의 지휘관이 회합할 수 있었던 것은 보통의 상황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보안사의 정보수집능력

보안사의 정보수집능력은 12.12 당일 신군부측이 정식 군수뇌부를 무력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이번 재수사 과정에서 새로 드러났다.보안사는 군내 각 부대의 움직임을 감청등을 통해 소상히 파악할 수 있었으며또한 각급 부대 보안부대장을 통해 각부대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파악할수 있었음.

이같은 업무는 정도영 보안처장이 담당했는데 보안사의 이같은 정보수집능력을 통해 육본 수뇌부 등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 3성 장군인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등이 진압군측 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 쌍방이 병력을출동시키면 유혈충돌이 일어난다"며 상대방의 병력출동을 막는 역할을 했음.물론 유씨 등은 신군부측의 병력출동은 은폐했다.

◇대통령 재가와 상관없이 정총장 연행지시

전씨는 12.12 당시 대통령의 재가와 상관없이 무기를 사용, 정총장을 연행하려했음을 이번 조사과정에서 자인했다.

전씨는 당일 오후 6시 30분에 최대통령으로부터 재가를 받을 계획이었으나당일오전 이미 우경윤 등에게 오후 7시 정총장을 연행하라는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였음.

◇기타

△전씨 등은 당시 정총장을 김재규와의 관련 혐의에 대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강제 연행했으나 10.26사건 당시 보안사 수사책임자였던 백동림씨에 대한 조사결과,정총장은 혐의가 없는 것으로 이미 밝혀진 상태였다.△12.12 직전 정총장은 보안사령관인 전씨 등이 참석한 지휘관회의 등 공개석상에서 전씨의 월권행위를 나무라는 발언을 하는 등 양자간의 갈등과 의견충돌이 있었음이 이번에 확인됐다.

가령 전씨가 합수부장의 자격으로 중앙부처 차관들을 불러 회의를 갖기도했는데 정총장이 이같은 점을 예로 들며 전씨의 월권행위를 지적했던 것.또한 박정희대통령이 살해된 뒤 청와대에서 발견된 자금중 2억원을 전씨가정씨에게 건네주며 "쓰시라"고 하자 정총장이 "이 돈은 모두 근혜양에게 줘야할 돈 아니냐"고 지적하며 이미 전씨가 청와대 자금의 일부를 멋대로 사용한 점을 나무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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