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개혁이끈 선조들의 슬기(실학)-동무 이제마

19세기를 살다간 동무이제마(1837~1900)는 허준과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가장 탁월한 의학자이지만 그의 사상이나 의학이론, 생애등에 대한 연구는조선 중기의 허준의 그것에 훨씬 못미친다. 하지만 허준은 나라의 적극적인지원을 업고 '동의보감'을 남긴 반면 이제마는 혼자 힘으로 인간의 체질을넷으로 나누고 그에 알맞는 의약체계를 확립, '동의수세보원'을 저술한 실학파 말기의 독보적 인물이다.이제마는 함흥의 어느 주막에서 주모의 못생긴 딸과 진사 이반오의 기연으로 서자로 태어났다. 이 아이를 데려오는날 할아버지가 제주도에서 용마를얻는 꿈을 꾸어 '제주도 말'이란 뜻의 '제마'라고 이름지었다. '서얼'이란신분제약을 벗어날 수 없던 그는 젊어서부터 무예를 닦아 무과로 나갈 준비를 했고, 청년기에는 유문협착증등을 오래 앓아 의약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892년 진해현감으로 나가 왕조말기의 해이한 기강을 바로잡던 그는 이듬해 현감에서 물러나 서울로 돌아와 그해 7월13일부터 사상(사상)의학에 대한 책을 집필하기 시작, 이듬해 4월13일에 마쳤다고전해진다. 일단 '동의수세보원'을 내놓은 그는 1895년 고향에 내려가 노모의병환을 돌보며, '보원국'이라는 한의원을 열고 환자를 보기 시작, 가난한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사례는 좁쌀 한되만 받는 인술을 폈다. 1900년에 다시 이 책을 수정하여 작업을 시작했으나 일을 많이 진행하지 못하고 그해에64세를 일기로 작고, 고향 율동마을에 묻혔다. 수정판 '동의수세보원'은 사후 제자들이 율동계를 조직하여 발간, 후세에 전하게 됐다.이제마는 인간의 체질을 유형화시켜서 사상인을 제시하고 질병 처방에 이를 적용하는 사상의학을 정립, 한의학의 혁명을 이루었던 인물이다.어떤 사람은 뚱뚱하지만 다른 사람은 가냘프고, 어떤 이는 위장이 튼튼하여 소화력이 좋지만 그렇지 못한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병에 걸릴확률도 서로 다르고, 당연히 치료하는 방법도 달라야 효과적이지만 막상 어떤 방법으로 인간의 체질을 나눌 것인가? 또 다른 체질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병리학 이론은? 또 약리학적 특성은 어떤가 등등의 문제에 확고한 답을내리기 어려운 것이 양의학계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제마는 이미 한세기전에이런 이론을 나름대로 정립, 동양의학 전통에서 아주 희귀한 의학사상가로등장했던 것이다.

'동의수세보원' 사단론에서 이제마는 신체 5장중에 심(심장)을 중앙의 '태극'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젖혀두고, 폐(허파)·비(지라)·간(간)·신(콩팥)의 4장을 사상에 연결, 인간의 체질을 태양인·태음인·소양인·소음인으로나누었다. 허파가 크고 간이 작은 사람은 태양인, 거꾸로 간이 크고 허파가작으면 태음인, 지라가 크고 콩팥이 작으면 소양인, 콩팥이 크고 지라가 작으면 소음인으로 이는 주역의 사상과 태극을 의학이론으로 동원한 것과 같은모양이다.

이제마는 감각기관과 신체 장기가 서로 연결(청각-천시, 시각-사회, 후각-도덕, 미각-풍토)되어 있음을 강조, 4체질의 특성을 밝혔다. 즉 태양인은 항상 전진하려 하고 물러나지 않으며, 소양인은 항상 시작하려 하고 그만두려하지 않으며 태음인은 항상 고요하려하고 활동하려하지않으며, 소음인은 항상 들어앉으려 하고 나오려하지않는다고특징지었다. 태양인은 소통하기를잘하고 교제에 능하며 소양인은 굳세고 날래고 사무에 능하며 태음인은 성취하기를 잘하고 머무르는데 능하며, 소음인은 단정하고 침착하여 무리를 이루기를 잘한다하여 사상인의 성질과 재능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양(태양인·소양인)은 동적이고 음(태음인·소음인)은 정적이며, 태는 적극적이고 소는 소극적이라는 4기준의 체질이 조합된 것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이제마는 인구 1만명중에 태양인은 3~4명에서 10여명 밖에 되지않고 태음인이 가장 많아서 5천명, 소양인이 3천명, 소음인이 2천명쯤이라고 주장했는데 통계의 근거는 전혀 밝혀져 있지않지만 재미있다.

그러면 이들 사상인의 구별이 만들어지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이제마는그 원인에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희로애락의 감정과 직결시키고 있다. 노여움을 자주 느끼게되면 허리와 늑골이 서로 닿았다 떨어지는 수가 많아 그 자리에 있는 간을 상하거나 작아지게 만들고, 같은 방법으로 기쁨은 지라를,슬픔을 콩팥을, 즐거움은 허파를 크거나 작게 만들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있다.

그에 의하면 체질이 서로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기질도 서로 다르고, 잘걸리는 병의 종류도 다르며, 당연히 치료의 방법도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요즘 그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상의학 실행자들에 따르면, 병에 걸리는 경향을 볼때 태음인은 기관지염, 폐렴, 결핵, 천식등의 호흡기 질환에 많이 걸린다고 한다. 또 태음인은고혈압, 변비, 치질등도 많은 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소음인에게는 위장에 관한 질환이 많다고 보고 있다. 사상인에게 각기알맞은 약품과 음식물도 서로 다르다. 녹용은 태음인에게나 맞는 약이고, 인삼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소음인에게 가장 효험이 좋다는 것이다. 또 각자에게 맞는 음식물도 서로 다르다. 대체로 태양인에게는 포도 앵두같은 과일과 조개등이좋고, 소양인에게는 돼지고기 해삼 참외등이 좋다.태음인에게는 쇠고기 무 콩등이 좋은가하면, 소음인에게는 개고기 닭고기 당근등이 좋다고 한다.

"이제마의 사상의학론은 체질에 따른 치료 방법만이 아니라 예방의학적인측면에서도 나름대로 영양과 섭생체계를 세우고 있다"는 박성래교수(한국외대)는 이제마가 욕망이야말로 인간을 가두는 감옥이며 이 욕망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따라 개인의 건강이 달려있음을 설파했다고 밝힌다. 이는 가장도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건강을 잘 지킬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단지질병과 치료에 관한 좁은 의미의 의학이 아니라 넓은 뜻에서 인간의 건강문제를 생각하게 해주는 전통사상의 독특한 관점을 우리는 이제마의 사상의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 그의 사상론은 지금의 과학방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또 증명할 수 없는 주장도 있지만 아주 흥미있고, 앞으로 이 방면의 연구가활성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박교수는 덧붙인다.

"이제마는 개화사상이 주도하던 19세기말의 사회적 격동속에 살았지만 근대적 개혁보다 전통의 새로운 해석에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였다"는 서울대금장태교수는 역학의 사상개념을 의학으로 끌어들인 그의 사상의학은 물질·육신만이 아니라 인간의마음도 포함하는 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라고 밝혔다.그는 한의학의 전통을 섭렵, 고전 한의학의 대표적 업적 '상한론'을 남긴장중경이 병증을 태양병증 소양병증 소음병증 태음병증등으로 나누었지만 인간 감정에 따라 오는 병의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이처럼 이제마는 병의 원인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체질과 감정에서발생되는 측면이 있음을 중시, 서로 다른 체질의 사람이 같은 증세를 보인다고 같은 처방을 내리면 도리어 해를 끼칠 수 있음을 경계하였다."인간과 사물, 인간과 하늘, 개인과 사회의 연관성을 해명하면서 사회와백성의 문제에 관심을 담고 있다"는 금교수는 그의 사상의학은 오늘에도 한의학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그의 사상의학은 한국철학사에서도 적절한 자리매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유학자 이을호씨는 "사상의학을 흔히 체질의학이라 부르고 그러한 국한된범주안에서 이를 이해하려는 태도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면서 사상의학은 심성도 체질 못지않는 사상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최미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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