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해특집-우연한 여행(1)-제1장 갓길산책①

눈을 뜨자마자 그녀는침상머리맡에 놓인 탁상시계를 보았다. 새벽 5시였다. 유리벽안쪽으로 드리워진 얇은 커튼밖으로는 미명이 다가와 있었다. 막힘없이 탁트인 새벽거리를 속시원하게 질주하고 있는 자동차 바퀴들의 마찰음이 언덕 아래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전신을 휘감았던 초저녁의 깊은 수면은 주사기로 뽑아낸 것처럼 일시에 달아나 버렸다.그녀는 시트를 걷어 제치고 침상에서 일어났다. 주방으로 나가 냉수 한컵을 마셨다. 밤새 냉장고에 갇혀 있었던 한컵의 물은 식도를 타고 내려 하복부 구석구석까지 차갑게 적시고 있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좁은 거실의소파에 앉았다.그리고 담배에 불을 댕겼다. 폐부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인뒤 길게 내뿜었다. 맞은편 소파에 놓여있던 쇼울을 당겨 무릎을 덮고 뒷덜미를 등받이에 기대고 앉았다. 언덕 아래의 도로에서 경적소리가 한 일자로 선을 긋듯 길다랗게 이어지며 멀어져 갔다.그녀는 다시 벽시계를바라보았다. 새벽5시10분. 그녀에겐 낯선 시각이었다. 그 시각에 잠에서 깨어난 적은 별로 없었다. 항상 새벽녘의 달고 단 잠속에 빠져있을 시각이었다. 시린 공기가 거실을 감돌고 있는 이 낯선 시각에불현듯 잠에서 깨어난 까닭은 분명 그 꿈 때문이었다.

꿈속에 펼쳐졌던 산과 계곡들의 배치, 그리고 산허리를 휘감고 먼 개활지로 흘러가는 물줄기의 형상은 낯설지 않았다. 낯설지 않다는 느낌에서 맴돌고 있던 그녀의 짧은 추억여행은 그러나 십여분도 흐르지 않아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난 가을의 일이었다. 기층문화유적지(기층문화유적지)에 대한 연구과 답사여행을 계속해 오는 민학회(민학회)를 따라 강원도 양양에 있는 불교유적지 답사여행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양양을 향해 한계령을 넘어 오색을 오른편으로 내려다보며 달리던 답사버스는 곧장 양양시가지로 향해 달리지 않고오른손편의 좁은 길로 들어섰다. 차창 아래로 미천(미천)의 깊은 계곡물이흐르고 있는 비포장 길을 30분정도 달리던 버스가 멎은 곳은 미천의 지류가흘러드는 왼편의 계곡입구에서 였다. 버스에 내린 일행들은 다시 미천의 지류를 따라 계곡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다시 30여분을 걸었을까. 일행들은 용복산 자락에 고즈넉하게 앉아 있는 퇴락한 석탑 하나를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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