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스를 위하여기억하고 싶었어요. 하마 삐그덕거리는
시간에 얹혀 제 한 몸 돌보지 못하는
반평이 같았어요. 그래서인가요?
하루 종일 거울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더군요.
오늘은 말이죠.
입 속을 보았더니 영영 캄캄해서 도무지
저 깊숙이 썩은 이빨, 아니다 아니다
으르렁거리는 사자를 닮았더랬죠.
벌린 입 언저리까지 찢어
탐욕에 뒤틀린 눈알 들이밀었더니
글쎄, 얼마나 어두운지 출구를 못 찾는 거 있죠.
뽑아내고 싶었어요.
거추장스런 허접쓰레기쯤이야 버린대도
대뇌 신피질엔 손상이야 있겠어요 고르고
골라서 차곡차곡 챙겨넣은
보석같은 추억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안팎 구별도 없이,
썩어도 안 썩은 체 하는
벌거숭이 임금님만 있는 거예요.
난 말이죠, 무서웠어요.
저 깊숙이 깨소금만큼 썩어 있던
이빨 도려내면
한 몸 되어 두리뭉실 엉켜온 다른 이들
죄다 끌려나와 종량제 봉투 속에
사려 깊게 버려질까
내내 겁이 났어요.
그래서인가봐요.
거울 겉에 달라붙는 치욕을 뚫고
진흙탕에만 피어나는 연꽃처럼
기억하고 싶었어요 가녀린 삶
영영 거울 속에 묻혀버린 애증과
아무래도 내 것이 되어주지 못하는
썩은 이빨 하나
기억하고 싶었어요.
**당선소감
몇해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쓰신 조세희 선생님과 통화를 한적이 있었다. 이후의 후속작품을묻는 내게 그분은 도리어 물어오셨다. "학생 생각에 지금 내가 소설을 내면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분은 탈고까지 마친 원고뭉치를 방 한쪽 구석에 밀쳐두었다고 하셨다. 몇년이 지난 지금도 그 원고뭉치는 여전히 그곳에 놓여져 그분의 내밀한고민과 끝없이 씨름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정쩡한 문학관으로 한걸음 한걸음 더디게 옮아가고 있던 내게 그분의 목소리는 내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세상을 책임지는 글이 정녕 무엇인지 알듯 모를듯 한 채로 난 그분의 목소리를 닮아가고 싶었고, 지금 등단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내게 있어 시란 세상을 조율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차라리 얼마나 희망해 왔던가!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늘 곁에서 질책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이시왕 선배와 아울러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한다.
▨약 력
△73년 경남 합천 출생
△92~93년 '복현'편집위원회 편집위원장
△95년 경북대학교 농화학과 졸업
△'도시의 시'동인
△주소:대구시 북구 대현 1동 25의10
*심사평
'나르시스를 위하여'가 수많은 응모작 가운데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섬세한 관찰로 자신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하고 있는 이 시는, 나르시스라는오래된 관념을 맞은편 시각에서 바라다본 것으로, 그 발상이 재미있고 침착한 묘사의 솜씨도 그만하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제부도 가는 길', '그녀는 스물아홉이었다'등, 이 작자의 다른 작품들도 고른 수준으로 시 쓴 이의 일정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어촌일기' 외 4편을 쓴 고순자, '그리고 아무 일이 없었다' 외 3편의 강성광, '시내버스' 외 4편의 박재창, '매일 흔들리는 부호?' 외 3편의 손상호, '칼가는 사내' 외 2편의 문성해씨등이 당선자와 더불어 경쟁을 한 분들인데, 이들의 작품들 또한 당선자에 버금가는 좋은 작품들이었다.여러번 투고된 일이 있는 것으로 기억되는 고씨의 작품들은 이번에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으나, 시를 완결짓는 어떤 매듭의 결여가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었다. 그 매듭을 시적 메시지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강씨의 시들은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의 소산인데, 특히 유머러스한 풍자는 매우 독특한 경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시적 논리에 보다 유의한다면 더 좋은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칼 가는 사내'의 문씨도 꽤 익숙한 시적 조사를구사하고 있고, 손.박 양씨의 작품도 일정한 시적 공간을 구성하고 있어 큰무리가 없다. 그러나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작품은 필경 삶을 어떤 수준에서새롭게 해주는 품격을 지향해야 하며, 모든 문체와 기법은 이를 위해 은밀한봉사를 해야 한다.
당선에서 제외된 분들이 다시 한번 음미해볼 부분이다. 당선자의 정진을기대한다.
황동규 〈시인.서울대 교수〉
김주연 〈문학평론가.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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