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해특집-히말라야 소왕국 부탄을 가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 벵골만에 널부러져 있을리 없었다. 그냥 벵골만의 파도는 형색없이 누렇게 험악한 모습으로 넘실대다가 잠시 푸른 파도로바뀌곤 했다. 방글라데시 쪽에서 찌든 가난과 함께 묻어 나오는 진흙탕이 넘쳐 망망대해 벵골만을 이 꼴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달마는 이미 동쪽으로간 뒤였고 파도는 여전히 절망적인 빈 바다를 채우고 있었다.히말라야의 소국 부탄으로 가려면 우선 방콕에서 1주일에 두번뿐인 부탄왕국 직영 드러크항공을 이용해야 한다. 드러크는 부탄인들이 가장 신성시 하는 용(용)이라는 뜻이다. 하늘로치솟으며 트림하는 용 문양이 곳곳에 그려진 70인승 드러크항공 비행기는 벵골만을 지날때 약간 힘겨운듯 엔진소리가굉음에 가깝다.벵골바다가 주는 자유와 공포를 선택하기가 무척 까다롭기때문일까. 까닭없는 긴장이 일순 가슴을 메운다.승객이라야 히피를 흉내낸 일본관광객을 포함 10여명 안팎. 잠시 기착한캘커타에서 인도인 보따리 장수 한명 태운게 고작이다. 4시간의 비행끝에 이윽고 히말라야의 엄숙한 준봉들이 고개를 들며 은자의 그 특유한 미소로움을비치기 시작하면 부탄은 이미 지척이다.

하늘에서 들어가는 유일한 부탄의 관문 '빠로'국제공항. 왕국의 문은 여기서부터 열리고 있었다. 공항은 흡사 시골 간이역이었다. 마약과 총기류및 전자제품의 반입이 엄격히 금지된다는 세관신고서가 겨우 국제공항으로서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었다. 놀랍게도 신고서에는 웅담을 소지하면 안된다는 조항도 못밖혀 있다. 혹시나 한국인의 내왕이 잦은가 싶어 물었더니 세관원은 처음이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은둔의 나라 부탄의 첫 인상은 세관신고서의 그 웅담때문에 떨떠름했다.워낙 별난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은 탓이기도 했다. 세관원은 친절했고 입국수속은 수작업이라서 좀 더디긴 했으나 예상보다는 빨랐다. 창틈으로 불어오는 칼날같은 강인한 히말라야의 바람이 지겨울 틈을 주지 않았다. 언뜻 보이는 산 자락의 흰 깃발 더미가 이국의 정취를 듬뿍 들이키게 했다. 후에 안일이지만 그 깃발은 성스러운 장소에만 나부끼는 깃발이었다. 시인 유치환의깃발을 연상시키는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부탄. 어떤 나라인가. 동부 히말라야에 숨은듯 태연히 위치한 나라. 인도와 중국 그리고 그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티베트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스위스 크기. 인구는 정확하지 않지만 1백40만 안팎. 인구를 정확히 셀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산에 흩어져 산다.

우거진 숲과 시원하게 출렁이는 계곡의 물살. 공기는 더없이 맑다. 우리와는 너무 닮은 얼굴. 이미 지난 73년 유엔에 가입하고서도 여전히 숨겨진 나라. 남의 나라 이야기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서구 신문들조차 10년에 한번꼴로 다룰 정도다. 그런부탄이 최근들어 부쩍 지구촌의 관심을 끌고 있다.마치 그곳에는 은자들이득실거리고 심지어 요술을 부리는 도인들이 들끓는나라로 통하기까지 한다.

부질없는 상상이다. 그들은 똑같았다.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자연과 그 자연속에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을 두고 맺는 상상들이다. 그만큼 입국이 까다롭기 때문이었을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천여명 안팎의 관광객들만 받아들였다. 밀리는 관광객도 싫다는 것이다. 겨우 올들어 좁았던 문이열리기 시작했다. 지난달까지 4천여명의 외국 관광객이 다녀갔다.가장 눈에 먼저 띄는 것이 전통의상. 거리의 몇 안되는 주민들 옷이 한결같다. 왕국의 신민들이기 때문일까. 좀 거추장스럽게 보였다. 부탄을 여행하기위해 왕국에서 내준 고물 자동차 운전기사 도르지 왕축씨(31)도 전통의상을 입고있다. 멋은 결코 아니었지만 한복입고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는 것과는 또다른 맛이 있었다.

'빠로' 시가지는 공항에서 불과 10분 거리. 시가지는 서부영화에서나 볼수있는 시골마을의 고만한 크기였고 첫 인상과 분위기도 흡사했다. 어디서 금방이라도 총구멍에서 불이 튈 것같다. 맨발에 간혹 슬리퍼 차림의 젊은 스님들이 무심한 얼굴로 스친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서부영화의 마을들이 숨막힐 듯하다면 이곳은 그야말로 평화와 고요가 넘친다는 것을 곧 느낄수 있다는 점이다.

〈김채한.안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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