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11년 봄. 경북은 1912년 11월 대구~포항간 2백50리 길을 격일제로 운행해온 승합(乘合)자동차.
일제가 조선을 합병, 식민지 기반을 구축한후 중국대륙 침략에 나서면서 전국적으로 건설한 도로와 철도가 우리나라 교통역사의 효시를 이룬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합승 자동차가 처음 도입된 1911년 경북도내 교통운반 수단은 객마차(客馬車) 15대, 하마차(荷馬車) 35대, 하우차(荷牛車) 10대, 하차(荷車) 2백31대, 인력거(人力車) 28대 등 고작 3백9대에 이른다.
도로망이라고는 대구~영천~경주~포항간의 동부선, 대구~의성~안동~단양의 중앙선, 대구~선산~상주~문경~충주를 연결하는 서부선등 3개노선으로 이마저도 겨우 우마차나 다닐수 있는 정도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후 도로에 자동차가 등장하고 산업물동량이 늘어나는 1919년부터 문경~상주~낙동~대구~경산~청도간 5백리길의 경부도로와 김천~약목~왜관~대구간 1백90리 천안도로를 개수하게 된다.또 대구를 정점으로해 원표(현 대구지방경찰청)~대구역간 5정46간을 포함한 경북도청~대구부청 5정27간, 대구~경주간 1백70리등 3개도로 3백80리7정53간을 개수하고 도로마다 등급을 매겨 관리하기도 했다.
1919년 경북도내 자동차대수는 승합자동차 40대와 화물자동차가 나타났다. 전국(남북한)의 자동차는 7백여대로 경북이 5·5%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발달로 인한 경제규모가 차츰 대형화됨에 따라 교통 운송업도 발전이 거듭돼왔다. 특히 1930년대 들어 육로운송 비중이 크게 늘어나 물동량의 상당부분을 승합자동차와 화물자동차가 떠맡게된다.
대구를 중심으로 사통팔달로 뚫려진 안동가도, 경주가도, 현풍가도, 경산가도등에는 여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는 자동차로 붐벼 자동차 운송사업이 일대 전기를 맞기도 한다.
이같이 1920년대 부터 자동차 운송업계가 각광을 받게되자 전국에서 1천3백여개의 회사가 난립돼여객과 화물의 수송물량을 놓고 서로 과당 경쟁을 벌이는등 부작용이 속출하기도 했다.따라서 조선총독부 산하 철도국은 1930년4월 조선운송회사를 설립, 1천3백여 운송회사를 통폐합해 각도에 지점을 둬 운영권을 행사하도록해 대구에도 지점이 설치돼 운송사업에 큰기여를 하게된다.
그러나 운송업계를 단일화한 조선운송회사가 독점으로 폐해가 극심해지자 하주(荷主)단체가 丸神운송회사를 설립해 대구를 비롯한 전국에 지점을 설치, 이에 맞섰으나 결국 1935년7월에 조운에병합됐다.
경북도내에는 1928년7월에 설립된 공영자동차를 위시해 조선자동차(주), (주)경상자동차, 65번택시, 대구역 구내택시, 대구부영버스, 경북자동차(주)등 10여개회사가 들어서 운송사업이 황금기를맞는다.
1953년 6·25를 맞아 전국의 운송업계가 불황의 늪에 빠지게 되자 전국자동차 운송사업조합 연합회가 결성되고 자동차 사업법이 제정되는등 제도적 개선이 잇따르는등 활로 모색에 심혈을 기울인다.
당시인 1954년1월19일 경북은 경북화물자동차 운송사업조합을 창립하고 초대이사장에 정기택씨를선출했다.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부터 경북도의 도로여건이 대구~포항~영해~영덕간, 대구~안동~영주~봉화,대구~고령~현풍~창녕, 대구~성주, 대구~상주, 대구~해인사 등지로 더욱 운행구간이 확대돼 갔다.1947년도 경북도내 도로 시설은 국도가 9백94㎞, 지방도1천5백33㎞, 시·군도로가 6백76㎞에 불과하던 것이 60년대 들어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실시이후 경부·구마·88올림픽·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는등 꾸준한 교통발전을 이뤄왔다.
지난해 경북도내 시군의 도로개설률이 고속도로가 1백84㎞, 국도1천9백53㎞, 지방도1천8백59㎞,시군도 4천6백97㎞로 나타나 경북도정 1백년 동안에 가히 교통혁명을 이루게 된 셈이다.경북도내 자동차 보유대수의 경우도 지난 59년 승용차 3백81대, 버스 553대, 화물차 1천6백27대이던 것이 지난해말 기준, 승용차는 7백53배인 28만6천8백53대, 버스는 65배인 3만5천8백88대, 화물차는 83배인 13만4천4백82대로 기록됐다.
철도는 해방당시 경북도를 관통하는 선로가 24·4%로 우리나라(남한)의 총2천4백33㎞가운데 경부선(유천~직지사) 2백58㎞, 대구선(대구~영천간) 38·4㎞, 경북선(김천~점촌간) 60㎞, 동해선(포항~모화간) 93·4㎞등 5백92·8㎞였다.
안동에 철도사무소, 대구 김천 경주 안동에 기관구(機關區)와 대구 김천 경주 안동 상주에 보선사무소가 설치돼 90여대의 기관차가 배치돼 1천여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었다.
해방후인 1946년 한해동안 철도 승객수는 2백27만여명, 소화물 1천2백80t, 화물은 24만4천9백t이었으나 80년에는 승객수는 28배인 6천4백40만명, 화물은 1천2백46만9천t으로 9천7백배로 증가한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의 역사는 1899년9월 노량진~제물포간 33·2㎞의 철도가 개설된 이래 1905년1월 대량 수송의효시로 기록되는 경부선 철도, 1970년 하루생활권으로 진입케한 경부고속도로 건설등으로 이어진다.
또다시 경북도정 1백년의 시공을 초월하는 제3의 교통혁명이 시작됐다.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고 국민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서울~부산간 4백11㎞의 경부고속철도 대역사가 막이올랐다.
〈金成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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