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복 많이 받으셨습니까
4천만 온 국민이 복된 마음, 넉넉한 마음으로 보낸 명절 연휴 동안 너나 할 것없이 문중 어른, 일가친척, 손아래위 만나는 사람마다 수십번씩은 서로 듣기 좋은 덕담(德談)을 주고 받았을 테고 덕담과 함께 주고 받은 세뱃돈도 엄청날 것이다. 소위 흔 세대와 쉰 세대 위쪽에서 내려 보낸 세뱃돈을 대충 어림잡아 보면 천원에서 많게는 1~2만원짜리 세뱃돈을 평균 5천원으로 셈쳐도 천억원대 쯤은 족히 되리라 짐작된다.
설을 보낼 때마다 가끔 느끼는 일이지만 그 엄청난 액수의 세뱃돈을 주고 받으면서 받는 쪽이나 주는 쪽이나 세뱃돈에 끼어서 빼놓지 않고 곁들여지는 덕담에 대해 각별스런 의미를 되새기는 경우는 그리 많지않아 보인다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설날 덕담의 유형은 특별한 예외를 빼놓고서는 대체로 몇가지로 묶어진다. 올해는 몸 건강하고 , 공부 잘하고 , 부모님 말씀 잘 듣고 , 돈 많이 벌고 , 오래오래 사시고 …. 대체로 오복과 평안을 비는 축원형이다. 덕담의 본디 뜻이 복을 축원해주자는 것이니까 굳이 기복적인 주문이라고해서 마땅찮다거나 나쁘다 탓할 건 없다. 다만 덕담도 조금은 덕담을 듣는 세대의 바꿔진 의식에 근접된 스타일로 바뀌어 나갈 필요는 있다. 설날의 덕담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상적인 훈담과는 약간 다르다. 우선 가르침을 주는 대상이 늘 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훈시만 하던 선생님과 달리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나 오랫만에 뵙는 낯이 덜익은 친척어른이다. 내용도 힘든 의무나 과제가 따라 붙는 내용이 아니다. 그저 귀로 듣고 흘려도 그만일 만큼 추상적이고 부담이 없다.
더구나 공부 잘하라거나 부모님 말씀 잘들으라는 정도의 훈계에도 세뱃돈이라는 보너스 가 따라 나온다는 점도 아이들에겐 신선한 자극이 된다. 그만큼 덕담의 교육적 효과가 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때로 사람들은 어릴 때의 극적인 상황경험이나 말 한마디에 의해 인생의 진로를 결정 지울 만큼 커다란 전기(轉機)가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설날의 감동적인 덕담 한마디나 시골에서 겪은 작은 경험이 의외로 평생 잊을 수 없는 유익하고 생생한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덕담이 명절이후의 일상으로 되돌아 왔을 때 현실과는 동떨어진 구두선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거나 덕담과 실제 어른들이 보여주는 삶과 행동의 방식이 모순될 때 그 덕담은 한낱 세뱃돈 줄 때 곁들이는 공치사에 지나지 않게된다. 덕담 자리에서는 씩씩하고 의롭게 살아라 고 하면서도 버스에서는 소매치기를 보더라도 공연히 끼어 들어 너만 다치지 말라고 가르쳐두는 것이 현실이라면 덕담은 교훈의 의미를 잃게 된다.
몸 건강하고… 말하면서도 인스턴트 음식을 절제시키지 않고 우리농산물 대신 수입깡통 식품을 먹이며 털옷으로 겹겹이 싸 감는 과보호. 덕담으로만 끝나는 덕담을 위한 덕담은 이제 우리의 신세대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도, 맞아 떨어지지도 않게 돼가고 있다.
아이들이 몰랐던 온고지신의 옛지혜나 경험에서 우러난 삶의 철학이 담긴 이야기를 전해야만 자그만 감동이나마 줄수가 있다.감동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기억될만한 흥미로움은 갖춰야한다. 입시에 실패한 재수생에게 막연히 열심히 해라 는 덕담보다는 이순신장군도 별과(別科)시험 말타기과목에서 낙마하여 왼쪽다리뼈가 부러지고 낙방을 했지만 다시 4년을 더 기다려 식년무과시험에 재응시, 성공한 재수생 이었다는 이야기가 그나마도 흥미 있게 기억 이라도 할만한 덕담의 효과가 있지않겠냐는 말이다. 신혼의 새댁에게는 복 많이 받으라 는 틀에 박힌 덕담보다는 첫아이 부터 반드시 모유를 먹이는 깨우친 엄마가 되거라 고 일러주는 덕담도 좋을 것이다. 어른께 드리는 오래오래 사시라 는 덕담도 육식보단 채식을 많이 하시고 소식을 하십시오 로 바꿔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설사 그 말이 고기반찬을 즐기시는 어른께는 화를 돋구는 말씀이 될지언정 식생활변화에 자극을 줄 수 있는 효성 깊은 덕담이 되질 않겠는가.
인격과 양심이 허술한 국회의원 후보자에게는 넌 좀 빠져라 는 덕담도 좋을 것이고.
설날 4천만이 수천만마디의 덕담을 주고받고서도 막상 일상으로 되돌아와 모두들 정신없이 뛰고 살아갈 때는 덕담과는 동떨어지게 다른 생활을 되풀이하는 설명절의 형식적이고 모순된 관습은 바꾸고 고쳐 볼만한 과제다.
이러나 저러나 올 병자년에는 반(半)만이라도 좋으니 덕담대로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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