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 바람이 가정파괴로 몰아

"가족제일주의 허물어져,핵가족.아이없는 집도 늘어"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가족 제일주의의 가치관을 갖고있는 민족으로 손꼽힌다.한민족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가족만큼 중요한 대상이 없을 것이다.

조선족의 가정은 언어와 사회습관을 지키면서 살아오고 있다. 조선족이 중국이란 낯선 곳에 정착하여 어려움을 극복한 힘의 원천은 가정이었다.

그러나 이 고정관념의 틀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만주 땅이다.만주의 삭풍보다 더 거센 자본주의의 강풍이 조선족의 가정에도 휘몰아치기 때문이다. 그 바람의 진원지는 한국이라는데 이견이 없는 듯하다.

연변에서 TV방송국 아나운서는 엘리트 직업에 속한다. 여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연변 텔레비전 방송국의 한 여자 아나운서는 서울에 1년 갔다온후부터가정에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연길시 공안국(경찰) 간부였다.

이 방송국에 근무했던 박모씨(49)는 그 여자 아나운서가 3개월간의 서울 모방송국에의 연수가 끝난후 친척집에 머물면서 1년 남짓 서울의 식당인지 술집에서 돈을 벌어 연변으로 돌아왔다 고 전했다.

박씨는 이후 이 가정은 사흘이 멀다하고 싸움이 벌어지더니 끝내 남편이 그부인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 치를 떨었다. 그는 연변에서 이런 사건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 이라고 덧붙였다.

연변대학 공대의 金모교수(44)는 서울에서 교환교수를 1년정도 지낸후 연길로돌아갔다. 연길시내 성년호텔에서 그를 만났을 때 金교수는 서울갔다 온 여자들이 있는 가정은 이혼하는 것이 유행 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서울에서 돈벌이하면서 돈을 물쓰듯 하는 한국의 남성들을 보고 돌아온조선족 여성들이 연길에 돌아온 후 다른 생각을 하는 것같다 고 전했다. 김교수는 간혹 서울에서 돈벌이하면서 만난 조선족 남성과 여성이 눈이 맞아 동거한후 귀국해서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 며 가정파괴 의 실상을 해부해 나갔다.

연길 시내에서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를 3년째 하고 있는 윤모씨(29)의남편은 모스크바에서 무역상을 하고 있다. 결혼한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 아이가 없다. 윤씨는 아파트 한채 마련할 때까지는 애기를 갖지 않기로 남편과 약속했다 고 말했다. 이 부부는 1년에 두차례 정도 만날뿐이다. 관광객이 없는 겨울철에 윤씨가 모스크바로 가서 열흘정도 남편과 재회하면 여름에는 남편이 연길로 온다고 한다.

연길 도문 용정등 연변지역에서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을 찾아 보기는 실로어렵다. 80년대중반부터 핵가족이 자리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식이 둘이상인 가정 또한 거의 없다. 조선족을 비롯, 소수민족은 두명의 아이를 가질수 있는 것이 중국 정부의 정책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조선족 가정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는 관념이 불문율처럼 굳어지고 있다.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 사무처에 근무하는 이성자씨(39)는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을 일본이나 미국으로 유학 보내는 것이 꿈 이라고말했다. 이씨는 서울 친척 방문때 느낀 자본주의 가정의 체험담 을 이렇게 늘어놓았다.

이씨는 무자비한 생존경쟁속에서 부모는 자식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돈있는 부모들은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가정교사를 따로 정한다…음악 무용 미술에 이르기까지 특장(특기)에 따른 교양까지 하느라 딸 둘의 교육비가 한달에 1백만원이 더 든다는 부모도 있다 고 전했다. 그녀는 이런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기가 서서히 연변으로 옮겨지고 있다면서 그러면서 부모와 자식간의 오순도순한 대화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 추세 라고 기로에 선 조선족 가정의 현실을 전달했다.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아버지는 가정 밖의 일에 치중하는 한국 가정의 자화상이 연변의 조선족 가정에서도 그대로 복사 되고 있는것이다.

1년에 10여차례 평양등 북한을 오간다는 신송국씨(53). 연길의 검찰청과 법원근처 빌딩 3층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책상과 서재에는 김일성 부자의 책이 수북이 쌓여 있다. 신씨의 입에선 여전히 김일성장군 미국이 통일을 방해하고있다 남한은 왜 북한을 믿지 못하느냐 는 등의 말이 쏟아지고 있다. 그는연변의 조선족들이 남북한의 좋은 점만 선택해 받아들여야 하는데 남한에 가서나쁜것만 배워오는것 같다 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씨는 서로를 감싸주고 위해주는 북한의 가정이 원래의 한민족 가정의 모습 이라고 자랑했다. 기자가 어떻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 고 묻자 신씨는 중국 공민증을 마련해 줄테니사흘정도 북한에 갔다오자 고 제의하기도 했다.

서울을 닮아가고 있다는 연변. 전통적인 가정의 모습은 깨어지면서 그 자리가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채워지고 있는것이 오늘날 연변의 현실이다. 가정 파괴, 이 현상도 분명 서울바람이 몰고 온 자본주의의 한 단면일 것이다.

〈연길.글=崔鳳振기자사진=朴熙萬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