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이 志操를 지키며 살아가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時流에 따라 마음을 바꾸지 않고 절개를 지키며 義롭게 살다간 사람중에는향토출신 心山 金昌淑선생을 꼽을 수 있다. 자의적인 정당활동에는 무관한 가운데 전통적인 유학의 대의명분론에 입각해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부르짖었던유림의 거두였으며 평생을 청빈으로 살다갔다.
임금보다 소중한 나라
한말에 태어나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하의 암흑기를 거쳐 신생 대한민국의 李承晩정권을 거치면서 구국의 일념으로 志操를 굽히지 않은 대쪽같은 선비이기도하다. 조선이 개항한때로부터 3년뒤인 1879년 慶北 星州에서 태어나 20대에구국운동에 앞장섰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다섯 역적의 목을 베라 는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1908년 일진회의 한일합방론에 대해서는 나라가 임금보다 중하다. 그러므로 임금의 명령이라도 정상적인 사고를 할수없는 혼미한상태에서 내린 명령이라면 따르지 않는것이 도리 라고 주상을 반박하기도 했다. 일제하에서는 수차례의 투옥과 고문속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에는 앉은뱅이신세가 되어 벽옹 이라는 별호를 얻기도 했다.
해방이후 찬탁 과 반탁 의 와중에서도 자주정부론의 선봉장으로 양대세력 모두가 존경하며 두려워한 國老로서 정신적인 지도자였다. 건국후에는 남북통일운동에 참여하면서 李承晩독재가 심해지자 하야를 촉구, 칠순이 넘어 두차례나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평생을 자기의 소신을 굽힌적이 없으며 두아들도 항일투사로 목숨을 잃었으며 현재 혈육으로는 친딸이 96세로 생존해 있을 뿐이다.
뒤집기 언동 다반사
지금 心山선생의 孤高한 일생을 다시 돌아보는 것은 총선을 앞둔 현정치판의오합지중을 보면서 너무나 한심한 양상이 벌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조는 결코 義로운 선비만이 지키는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들을 잘살게하고 풍요로운사회를 만들겠다고 장담하는 정치인이야말로 지조가 있어야한다.
그런데도 15대총선을 앞두고 與.野黨의 총수들이나 선량지망생의 양태는 소신과 지조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고 의석확보와 당선지상주의뿐이다. 與.野黨 총수들의 뒤집기 언동 은 이미 모든국민이 지켜보았으며 당선을 위해서는 그동안자기가 몸담았던 당이나 문을 두드렸던 당을 하루아침에 내팽개치고 다른당을찾는것이 다반사이다. 정치를 위해서는 친족도 팽개친채 골육상쟁도 서슴지 않으며 정치지도자들도 이를 부추기고 있는것이 지금의 양상이다.
그래서 요즈음 청소년들에게 커서 정치인 되어라 고 말하는것은 욕이라고 한다. 정치인들의 말은 허구일뿐, 총선고지를 향한 술책일뿐이다. 독재권력에 빌붙어 행복을 누리던 정치인이 어느날 민주투사가 되기도 하고 독재권력을 단죄하는 대열에 서기도 한다.
政治圈자정 기대못해
현재 진행중인 역사 바로세우기 도 자칫 이러한 정치판의 연장선상에서 의구심을 갖고 보는 국민들이 많아지는 것같다. 정치판이 아무리 추잡하고 더러워도 우리사회에서 정치인과 정치권력의 영향력은 너무나 막강하다. 막강한 재벌도 권력앞엔 금방 쓰러지기도하고 새로운 재벌이 탄생하기도 하며 유명인사가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광경을 앞의 정권에서 숱하게 보아왔다.
역사 바로세우기 를 위해서도 정치권의 물갈이를 통한 철새정치인과 변절자들을 제거해야한다. 이같은 작업은 현재의 정치판의 자정작용으로는 불가능하며오직 유권자들의 손에 달렸을뿐이다. 心山의 지조는 못따르더라도 명분이 뚜렷한 정치인에게 정치를 맡길수 있는 혜안을 가졌으면 한다.
〈本社 論說委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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