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

"뚫린 검증의 그물"

이번에도 유권자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4년전 아니 40년전 그랬듯이 돈봉투가 춤을 췄다. 각종 연(緣)이 위력을 발휘했다. 거짓말은 홍수를 이뤘다. 신성한 주권은 그 앞에서 눈 귀가 멀어비틀거렸으며, 후보자는 돌아서서 웃음을 머금었다.

돈은 묶고 말은 풀었다 는 통합선거법은 맥을 추지 못했다. 1개동에 3명만 두도록 한 유급운동원은 합동유세 때마다 수백명으로 불어났으며, 출퇴근 길목마다 어깨띠 운동원들이 넘쳐났다. 이런 식의 선거법 위반 행위는 선거기간 내내 공공연했지만 단속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투표는 검증의 그물이다. 후보 개개인에 대한 심판은 물론 각 정당의 정강정책에 이르기 까지의총체적 검증행위이다. 부릅뜬 눈으로 후보와 그 정당을 낱낱이 살펴보고 최선이 여의치 않다면차선의 선택을 하도록 한 절차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역대 선거판이 항용 그러했듯 이번 역시 그같은 기능의 발휘는 매우 미흡했다.민의의 전당에 발을 들여 놓아서는 아니될, 일반사회에서 조차 내몰려야할 부정부패, 지역주의,권모술수, 사생활 문란, 시류영합, 권력추종, 매표행위 등이 거침없이 검증의 그물 을 빠져 나갔다. 금배지를 단 것이다.

이런 선거판을 두고 전문가들은 후보 검증제를 보다 분명히 하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를테면 후보사전등록제를 도입, 3개월 또는 6개월전부터 (선거운동은 금지) 유권자들이 후보의 모든것을 알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또 하나 후보 벌점제 같은 제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 운전면허제도와 같이 후보들의 선거법위반시 벌점을 부과, 일정한 벌점에 달하면 후보등록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현재와 같이 수차례 경고도 아랑곳않는 선거법 위반행위를 막을 수 있지않나 하는 생각인 것이다.물론 모든 곳에서 모든 당선자들이 선거법을 밥먹듯 위반하고 그 자격이 의심스럽다는 것은 아닐것이다. 대체로 그런 판세가 주도하는 가운데 15대 총선은 끝을 맺었다는 현장보고이다. 20C의마지막 선거이며, 21C의 선진길목에 들어서는, 세기적 의미까지 부여한 전문가들의 요란한 진단과 구호가 무색한 선거 결과인 것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심각하다. 선거의 또 다른 역할인 주민통합기능은 아예 그 싹 조차보이지않으며, 되레 분열과 갈등이 위험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다시 내년의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전국은 곧 성급한 선거열풍에 휩싸일지도 모를 일이다.이런 일그러진 선거풍토를 하루빨리 걷어내려는 국민적 자각과 노력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승자는 패자의 눈물을 어루만지고 패자는 승자의 기쁨을 안아주는, 그래서 승자와 패자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주민앞에 나서 화합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고싶은 것이다.〈金成奎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