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

"외국어 열풍의 허와 실"

거국적 英語회화 붐

노인학교에 다니는 경상도 할아버지 댁에 역시 같은 노인학교에 다니는 전라도 할머니가 방문하여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자, 경상도 할아버지가 인터폰으로 누구냐고 묻는 말, 후(Who)고? 할머니 대답왈, 미(Me)랑께

이상은 어느 개그맨이 요즘 열풍처럼 전국을 휩쓸고 있는 영어회화 붐에 대해 우스갯소리로 한말이다.

국제무대에 영어가 세계 공통어로 활용되고 있고, 개인소득 증대와 더불어 국민들의 해외여행이부쩍 는 요즈음 우리나라에도 영어회화 공부가 붐을 타기 시작하여 유치원 어린 아동에서 70세노인에 이르기까지 나라전체가 영어회화 열기에 후끈하게 휩싸여 있다. 수많은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 프로에도 영어회화는 빠트릴수 없는 필수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 있고, 초중고등학교의정규 교육도 모자라서 각종 학원과 노인학교 주부학교 심지어는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영어회화는요람에서 무덤까지 가히 거국적일 만큼 정열적으로 교육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괴상한 영어회화 열풍에 우리는 언제까지 넋을 빼앗긴채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가? 교육은 교양을 쌓아 개인생활의 질을 높이거나 장차 사회에 나가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한 일종의예비투자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투자를 하기 위하여는 그 투자가 과연 우리 필요에 합당하며 생활에 얼마만큼 유용한가부터 따져봐야 한다. 실용성이 없고 투자효율이 낮다면 우리는 그 투자를재고하거나 포기해야 마땅하다.

의사소통과 敎養

영어회화는 외국어의 특성상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경비가 소요되는 어려운 공부다. 끊임없는 반복과 외우기 듣기 말하기등 개인의 편차에 따라서는 그 어떤 공부보다도 힘들고 지루하며 짜증스러운 공부일 수 있다. 특히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주목적인 영어회화는 영어독해 능력과는 달리개인의 교양을 높인다는 의미와는 어딘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식과 교양을 취하기 위하여는영어 텍스트를 통한 독해능력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합쳐 십년동안 영어공부를하고서도 외국인을 만나서는 말 한마디 못하는 반벙어리들만 양산해왔다는 식으로, 마치 영어회화만이 유일한 영어공부인양 영어독해를 형편없이 비하하는 이상풍조에 난폭하게 휩쓸려왔다. 그런 비난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여기서 정중하게 되묻고싶다. 대한민국에 사는 내가 영어회화를못해서 지금 당장 내 생활에 불편한 것이 무엇인가?

사실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 일생중 외국여행을 할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적다. 그리고 설혹 외국여행을 가더라도 본인이 꼭 영어로 말해야 될 필요도 없다.

더구나 평범한 가정주부나 은퇴 노인 육체노동자 기타 평범한 직책의 공무원 회사원 같은 사람들이 그들의 일생중 외국인을 만나 영어로 말할 기회는 매우 드물거나 아예 없다. 이 희소한 몇번의 기회를 대비하여 그토록 어렵고 힘든 영어회화 공부를 막대한 시간과 노력과 경비를 들여가며온 국민이 머리 싸매고 열심히 해야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그들이 별로 쓸데없는 영어회화 공부에 정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안타깝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일…

그들이 정작 부끄러워해야될 것은 영어회화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될 책을 읽지 않고, 알아야 될 상식과 예의를 저버리고, 갖춰야될 교양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 영어회화를 못하는 것은 조금도 흉이 아니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끝으로 내게는 이 대책없는 영어회화 열풍만 생각하면 무심코 떠오르는 안타까운 장면이 하나 있다. 잘생긴 우리나라 젊은이가 만면에 아첨하는 웃음을 떠올린채 귀찮아하는 외국인의 뒤를 따라가며 열심히 영어로 말을 건네는 딱하고 비열한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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