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칼럼-생각하는 삶의 찬가

화창한 봄이 왔다. 죽은 듯 했던 산과 들이 어느덧 푸른 잎과 꽃으로 곱다. 삶은 무한히 신비롭고 아름답다. 삶의 축제가 한창인 며칠전 나는 친구의 부고를받았다. 나는 죽음과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잠깐 지나가는 映像

나의 죽음은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의 절대적 끝이다. 보는 것도 말하는 것도,기쁨도 슬픔도 모두 끝이다. 맛있는 것도 더는 먹지 못하고, 그리운 사람을 더는 만날 수 없으며, 아름다운 생각도 더는 해볼 수 없다. 죽으면 땅에 묻혀 썩어 흙이 되거나 불에 타서 재가 되어버린다. 죽으면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다.부모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자식을 매장하면서, 친구가 누워있는 관 앞에 분향하면서 느끼는 처절한 슬픔은 죽음이 한 생명으로부터 모든 것을 박탈하는 궁극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이란 TV스크린에 단 한 번 잠깐 지나가는 영상같은 것이 아닌가. 그TV의 뒤를 보거나 속을 뜯어봐도 한 번 지나간 영상을 다시 찾을 수 없듯이

한번 세상을 떠난 부모, 자식, 친구를 다시는 찾아 볼 수 없다. 우리의 삶이 언젠가는 TV스크린을 지나가는 영상같이 아주 사라진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

는 현실이란 하나의 허상이며 스크린 뒤에 꺼진 영상이 진짜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동물의 세계 라는 TV프로그램이 수많은 시청자의 주의를 끄는 것은 그것이

동물로서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물의 세계 에서 태어나서 성장하고 생식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약육강식의 먹이 사슬의 고리 속에서 죽고마는 모든 동물들의 운명을 보여준다. 언젠가는 죽어야한다면 인간의 운명이동물들의 운명과 다를바 없고, 동물들의 삶이 허무하다면 인간의 삶도 다를 까닭이 없다. 언젠가는 죽어서 뼈도 남지 않고 이 세상에서 없어질 수 밖에 없다면 고달프기만 한데도 영원히 반복되는 인생은 무엇을 뜻하는가. 삶은 허망하다. 아무리 화려한 삶을 살 수 있더라도 결국 죽고만다면 삶의 궁극적 뜻은 없다.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동물과 같은 자연의 일부

인간은 생각하는 철학자이기 전에 먼저 생물학적 동물이다. 우리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삶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살고있지 않다. 인생은추상적 관념이기 전에 식물이나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이다.

잔인한 하이에나에게 잡혀 뜯어 먹히는 새끼를 바라보며 분노하고 슬퍼하는 가젤들은 어쩔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과 아울러 삶의 공허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본능적으로는 더 살아남으려고 목숨을 걸고 도망친다. 숨을 거두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며 무한히 슬픈 나는 어머니를 땅에 묻고 돌아와 세수하고 저녁을 먹고 보약을 마셔야 하며, 어린애들의 장래를 걱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이에나에게 뜯어먹히는 새끼를 뒤로 하고 살아남으려고 도망치는 어미 가젤과다를 바 없다. 사실 그렇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도 어쩔수 없는 우주의 질서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 앞에서 우리는 엄숙함과 아울러 가장 나약한 갈대로서의 무력감을 느낀다.

어쩔 수 없는 우주의 질서

그래도 인간은 역시 생각하는 갈대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인생의 의미가 있든없든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은 그만큼 뜻있는 삶을 의미한다. 생각하는삶이,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사는 삶이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삶이 인간의 삶일 수 없으며, 인간의 삶은 생각하고 살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겨울이 있어서 봄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죽음이 있어 삶이 더 숭고하고 귀중하다. 죽음이 삶의 궁극적 끝이기에 삶은 그만큼 더 충만하고, 죽음이 모든 의미를 박탈하기에 삶은 그만큼 더 귀한 의미가 있다. 삶과 죽음의 영원한 순환의고리 속에서 또 겨울이 와도 봄은 역시 곱다. 삶은 찬미롭다. 생각할수록 더욱그렇다. 생각하고 사는 삶은 아름답다. 깊이 생각하는 삶일수록 더욱 그렇다.

〈포항공대 교수.철학 朴異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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