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世風

"政治는 바로 對話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孔孟의 道를 따지고 주자가례를 지킴에 있어 종주국보다되레 더 철저해서 중국인들조차 海東朝鮮國으로 찬탄했다 한다.

요즘도 佛經이나 바이블의 해석과 그 실행에서 가장 원론에 충실코자 노력하는곳으로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나라가 꼽힌다.

어쩌다 이정표를 나타내는 영문 표기가 틀렸을 경우 외국인 보기 낯 뜨거워진다 는 내용의 투고들이 잇따르면서도 우리 말 표기의 받침 자가 떨어져 나간것은 예사롭게 넘어가는게 우리 현실이다.

외래문화 소화력 대단

어떤 이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우리 민족에겐 예로부터 외래문화에 대한 문화적 사대근성이 잠재해 있는게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래의 고급문화에 대한 높은 선호도가 우리를 이만큼이나 키웠다는 측면에서 이런 특성은굳이 나무랄 일만도 아닌 외래문화 소화능력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든 오늘날 좁아진 지구촌 시대에 놀라운 외래 문화의 소화력을 지닌 우리들인만큼 나날이 모든 분야가 일신되고 국제화 되고있거니와 그렇지 않은 분야가 애오라지 한 군데 있다.

바로 우리 정치가 그렇다. 3金이 30년을 두고 정치권을 누빈후 아직도 민주정의 실현을 위해 대선 출마를 고려하겠다 해도 꿀 먹은 벙어리인양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세계의 어느 민주국가에서도 볼수없는 대선 출마 3修, 4修가 가능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우리 민족 특유의 외래 문화 소화력도 정치판에서 만은 별볼 일 없이 무력화 돼버렸다고나 할까.

근래 정국을 경색시키고 있는 신한국당의 勢 불리기만도 그렇다.

당초 언론이 與野 당선자의 의석 분포를 보고 절묘한 배분 이니 황금의 분할이니 했지만 그 저변에는 전통적으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치 못하면 불안해서못 견디는 여당의 습성을 감안, 참고 대화해서 조화로운 정치를 해달라는 당부가 짙게 깔려 있었던게 사실이다

국민의 당부 무시

그런만큼 開院되기도전에 처음의 1백39석을 과반수선으로 인위적으로 불려놓은것은 어떤 의미에서 정치의 실종으로 볼수 밖에 없다할 것이다. 당초 신한국당이 확보한 1백39석은 여당의 정치 주도권은 인정하되 다수 의석을 빙자해서 교만하지 말라는 국민의 신성한 당부 였다고 볼수도 있음직 하다. 그런데 누가과연 국민의 당초 당부한바 견제와 균형의 정치구도를 마음대로 바꿀수 있는권능을 갖고 있단 말인가. 우리 정치권에는 與小野大가 될때마다 정계개편이논의되는게 상례이다시피 돼오고 있다. 야당이 몇석 많으면 껄끄러워서 정치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권 인사 영입에 혈안이된다.

과거 유신정권 시절 金泳三종채의 의원제명안을 몰아붙이다가 결국 정권이 무너졌고 가까이는 3黨합당의 인위적인 구도를 주도한 盧泰愚씨나 民正系 인사들의 현재상황을 본다면 어거지 黨勢불리기가 얼마나 무리수인지 알만도 한데 여전히 與大野小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치로 따진다면야 의석을 잃은만큼 민심이 離反된것이고 그에따라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중소기업을 살리는등의 민생안정에 영일이 없어야 될텐데 그렇지가 않으니 말이다. 물론 말이 되나 안되나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는 야당 때문에 안정의석 확보가 선결문제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국회 문도 열기전에 與小野大를 여대야소로 바꾸어서야 국민위에 군림하는 정치가 아니고 그 무엇이라 할 것인가.

민심離反 되돌려야

정치는 대화를 전제로 한다. 국민과의 대화, 야당과의 대화가 바로 민주정치의요체다. 따라서 이번의 신한국당의 거두절미한 당세 확장은 그 자체가 갖는 의미보다 여차직 하면 안정의석을 바탕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발상을 깔고 있기에우리는 더욱 분노하는 것이다. 대화를 거부한 일방의 정치-. 그것이 국제화시대의 한국정치의 현주소여서야 될 말인가.

〈本社 論說委員 金燦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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