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通法府'오명 씻어야

국회를 흔히 입법부(立法府) 라 한다. 바로 국회의 본래 역할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입법부라는 말을 선뜻 붙이기가 어렵다는 게 국민들의솔직한 심정이다. 우리 국회의 독특한 별명인 통법부(通法府) 라는 말이 이를잘 대변하고 있다. 정부가 발의한 법률안을 그저 통과나 시켜주는 통과기관으로 우리 국회가 전락한 현상을 꼬집은 말이다.

이런 현상은 수치상으로도 잘 나타난다. 14대국회 임기중 제출된 총 9백2건의법률안 가운데 정부가 제출한 5백81건은 98%의 처리율을 보인 반면, 3백21건이제출된 의원발의 법률안은 처리율이 61%에 불과했다. 의원발의 가운데는 정부가 의원 이름을 빌려 발의한 경우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주요 법률안의대다수는 정부발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정이다.

여기서 의원발의 법률안의 처리율이 정부안보다 낮은 것은 야당발의 법률안이여당에 의해 무조건적 또는 조건반사적 으로 부결처리된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부실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다면 의원의 입법활동이 부진하고 결국 법률안의 부실을 가져와 통법부로전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의원 개인의 문제와 제도적 문제 그리고 우리정치 현실의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의원들의 개인적 노력부족 이다. 14대국회에서 처리된 법률안 6백56건의절반이 넘는 3백50건은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법률안이 완벽하지 못했다고 전제하면 의원들이 알고도 보지 않았거나 몰라서 손대지 못한 경우일 것이다. 무식 내지는 무관심의 결과다.

현재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지원되는 인력은 4급 보좌관과 5급 사무관 6, 7, 9급 비서 각 1명씩 5명이다. 이들을 국비로 지원하는 취지는 물론 입법활동을보조하기 위함이다. 의원들은 이같은 수준에 대해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여건도 갖추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다고만 비난한다 고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나마도 제대로 활용치 않은 의원이 대다수라는 것이 문제다. 14대 국회의원 2백99명 가운데 이들을 입법활동에 활용한 의원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외에는 일상업무처리 지역구관리 심한 경우 소일 (消日)에전념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국내최대. 최고규모와 시설을 자랑하는 국회도서관은 이미 대학원생들의 참고도서관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도서관에 발을 들여 놓으면 공부안하는 의원 이라는 현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비회기중은 말할 것도 없고 회기중이라도국회의원을 도서관에서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도서관보다는 사우나에의원들의 밀도가 더욱 높은 것이 현실이다.

그 다음이 제도적 미비 다. 현재 중립적 위치의 국회사무처에는 의원들의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법제실과 입법조사분석실이 따로 있다. 그러나 여기소속된 인원은 각각 18명과 42명에 불과하다. 日本의 법제실인원 1백여명과 美國의 입법조사국의 6백여명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은 수치다. 전문성과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의원들의 입법활동 지원을 기대하기에는 부족하기 이를데 없다.

그리고 법률안 심사과정에서 의원들의 의사표시가 제도적으로 공개되지 않는것도 문제다. 의원활동을 감시할 만한 제도가 없다는 말이다. 일부에서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감시,공개하자 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도운용의보완과 인력 및 예산지원을 대폭 확대시키지 않는 한 의원들의 입법활동이 갑자기 향상되는 일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목이다.

여기에 의원 20명이상인 법안발의 정족수를 의원 개개인이 할 수 있도록 완화하는 방안도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장려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원들을 내모는 정치현실 이다. 법률안 심사 때 당론에위배되는 개인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열심히 뛰어다녀 봐야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의원들도 개개인이 헌법기관 이라는 이상론을 생각하면 자신들이 통법부의거수기 로 전락했다는 점에 심한 자괴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막상 현실은다음선거가 눈 앞에 아른거리고 지역구민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아 다른데신경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 한결같은 주장이다. 법률안 하나 만들어 내느니 그시간에 지역구민들 손 한 번 더 잡아주는 것이 득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앙에서 아무리 잘나가도 지역구에 자주 보여야지 지명도만 믿다가는큰 코 다치기 십상 이라는 한 중진의원의 말은 유권자들의 변치않는 의식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결국 국회가 명실상부하게 입법부로서 자리매김을 다시 하기 위해서는 의원 개개인의 노력과 함께 제도적 뒷받침은 물론 지역구와 유권자라는 정치현실적인요소까지 변하지 않고서는 우물가에서 숭늉찾는 격 이 되기 십상이다.

〈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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