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명 이야기-오랑캐꽃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의 교혼(交婚)을 내용으로 한 설화가 적잖다. 불알이 다섯개 달린 오랑이라는 개(犬), 즉 오랑개 얘기도 그 중 하나. 이 오랑개가 두만강 가에서 빨래하던 처녀를 범해 머리털이 누런 자식을 낳았다. 그 자식이 두만강을 건너가 나라를 세워 시조가 되니, 그 후손이 오랑캐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꽃에도 오랑캐꽃이 있음은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은 제비꽃의 일종이다. 제비꽃은 전세계적으로 약 4백50여종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11% 50여종이 한반도에자생한다. 고깔제비꽃, 태백제비꽃, 남산제비꽃, 졸방제비꽃, 낚시제비꽃, 그냥제비꽃…등등. 한반도 50여종 중에서도 으뜸은 태백제비꽃이다. 남쪽을향해 여린 흰꽃을 내미는 이것은 한반도의 특산이자, 백두대간 태백산맥의 주인이다. 이들 제비꽃은 거의가 이른봄 숲지붕이 가려지기 전, 양지바른 산자락에서 수줍은듯 살며시 핀다.

그러나 보라색의 오랑캐꽃은 제비꽃 일종이면서도 골프장 잔디밭 같은 무덤생태계 를 수놓는다. 덕분에 제비꽃 중에서도 가장 흔히 보게 된다. 제비꽃의 서양 이름인 비올라 는 질서를 깨뜨린다 는 뜻의 라틴어 어원을 갖고 있다고한다. 국경을 넘나들며 백의민족을 괴롭히던 북방민족을 우리 선조는 오랑캐로불렀었다. 질서를 깨뜨린다는 의미가 동서양 양쪽 모두의 제비꽃 이름에 부여됐다니 참 묘한 일이다.

더욱이 요즘은 더욱 오랑캐 더미가 됐다. 도시 길모퉁이 화단은 서양 제비꽃에서 개량된 오렌지족 식물 팬지가 차지해 버렸다. 대구 동성로는 염색한 누런오랑캐 머리칼로 장식됐다. 그리고 산천은 오랑캐꽃이 덮고 있다. 태백제비꽃의줏대 있는 문화는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교란된 환경과 어우러진 뒤에나타난 현상일 터이다.

金鍾元〈계명대교수, 식물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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