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는 전통이 남아있다. 도시인들은 그 전통에 짙은 향수를 갖는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 높은 일이다. 더욱이 도시인을 위한 고향의 정서는 훌륭한 상품이 된다. 농촌을 관광자원으로 가꿔내는 것은 그래서 농촌의 새로운 활로가 된다.
本報는 현지 특파원의 생생한 르포를 통해 관광농촌 선진지 美國의 사례를 소개, 우리 농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워터포드는 美國의 수도 워싱턴DC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인구 2백여명의 조그만 마을이다.
4월 중순이 넘었는데도 한차례 몰아친 폭풍설 때문에 중세풍의 옛 주택들은 군데군데 새하얀 잔설을 이고 있다.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봄맞이로 단장한 꽃밭이 줄을 지었다. 봄볕에 활짝 꽃봉오리를 터뜨렸던 수선화들이 갑자기 몰아닥친 눈보라 때문에 지친 듯 고개를 떨궜다.마을은 조용하기만 하다. 새파란 복장의 초원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마치 배우가 떠나버린 연극무대처럼 정적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매년 10월 첫 주말이면 이 마을은 온통 인파로 뒤덮인다. 유명한 워터포드 페어 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때면 이곳 작은 마을에는 美國의 전통적인 온갖 수공예품과 미술품, 장식품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큰 장이 선다. 하프를 켜는 민속음악가들이 길거리 공연을 갖고 백파이프를 든 취타대들이 행진을 벌인다. 무엇보다 1백~2백년 묵은 옛 주택들을 방문객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美國사람들에게커다란 흥미거리다.
워터포드의 역사는 17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펜실베이니아에 거주하던 퀘이커 교도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오면서 워터포드의 역사는 시작됐다.
퀘이커 교도들은 주로 곡물을 재배하는 농부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착을 위해 방앗간부터 지었다. 농부들은 방앗간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자연히 이곳은 마을을 이뤘다.
19세기 초반 워터포드는 급속히 발전했다. 농가가 많아지자 대장간을 비롯해 양초, 마차, 총포, 의류 등을 만드는 수공업자들이 하나 둘 생겨나 마을은 나날이 번창했다.
무엇보다 워터포드는 일찍이 노예신분으로부터 풀려난 흑인 가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흑인 자유인들의 정착이 많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흑인들은 농장으로 둘러싸인 워터포드에 일자리가 풍부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남자들은 농장 인부로 일했고여자들은 주로 빨래를 해주는 일에 종사했다. 짐수레를 끌거나 요리사로 일하기도 했고 대장장이나 방앗간 인부도 흑인들 차지였다.
흑인 가구가 많았던 덕분에 남북전쟁 당시 워터포드는 남군측이었던 버지니아州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해방에 찬성하는 북군측에 가담해 남군과 싸웠던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그러나 1871년 美동부 지역에 철도가 놓이면서 워터포드는 개발 혜택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말았다. 철도가 워터포드를 멀찌감치 비켜가는 노선으로 부설되고 말았던 것이다. 남군 속의 북군이라는 정신적인 고립은 철도 노선마저 비켜감으로써 지리적 소외로 이어졌다.
그동안 농장지대의 상업중심지로 번창하던 워터포드는 그 영화를 철도역이 인설된 인근 리스버그로 넘겨주고 말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30년대 대공황이 몰아쳐 워터포드는 피폐할대로 피폐해지고 말았다. 1700년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워터포드의 아름다운 옛 주택들은 심하게 훼손됐다.그러나 개발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워터포드는 마을의 원형을 그대로 지키는 쪽을 택했다. 방앗간을 중심으로 한 옛 주택과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개발 로는 찾을 수 없는 전통 을지키기로 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1943년 마을에서는 워터포드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 설립과 함께 주민들은 너나 할것 없이 마을을 보존하기 위한 일에 발벗고 나서게 됐다.
재단설립과 함께 워터포드 마을은 재단기금을 늘리기 위한 사업에 착수했다. 그것이 바로 워터포드 페어 였다. 마을 안에서 대를 이어온 수공업자들을 비롯, 인근 지역의 수공예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일년에 한차례씩 수공예품 큰장이 서도록 하는 것이었다.
날짜는 매년 10월 첫주 금.토.일요일 사흘동안. 작년 10월의 워터포드 페어 는 그 52주년을 맞는 행사였다.그 역사에 걸맞게 워터포드 페어 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볼만한 장날(the fairest of fairs)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년 10월5일 기자가 워터포드 페어 를 찾았을 때. 가을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계절 덕분에워터포드 가는 길은 온통 단풍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을 어귀 워터 스트리트 목장에는 임시 주차장이 가설돼 있었다. 드넓은 초원의 주차장을 가득채운 형형색색의 자동차들은 푸르른 풀밭과 어울려 그 자체가 장관을 이뤘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장료는 성인 한사람당 10달러씩, 신분증처럼 가슴에 달게돼있는 입장권은 나중에 책갈피꽃꽂이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입장권과 함께 제52주년 워터포드 주택관광 및 수공예품 전시회 라는 제목이 인쇄된 60쪽짜리소책자가 제공됐다. 한 똑 한 쪽 마다 책자제작이 가능하도록 성금을 낸 기증자들의 이름을 인쇄해 둔 이 책자는 워터포드 관광을 정말로 재미있게 도와주는 훌륭한 길잡이였다.워터포드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러나 이 소책자는 마을의 집한채 한채마다 서려있는 전통과 옛이야기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흑인자유인이 많았던 마을의 독특한 역사를 전해준다. 또한 길거리에 차고 넘치도록 수없이 모여있는 수공예품들이 얼마나 진품인지도소상히 설명해 준다. 의미 를 알고나면 관광은 더욱 깊이를 더한다. 그래서 이 소책자는 워터포드 관광의 재미를 두배 세배 키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을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메인 스트리트 는 온통 인파로 차고 넘쳤다. 마을 중앙 광장에는하프, 벤조, 기타를 든민속악단의 컨트리뮤직 공연이 한창이어서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커다란 마을 창고는 드라이플라워며 태피스트리 직물공예품으로 가득 차있고 길거리 양쪽에 즐비한 노점에는 닥나무 껍질을 벗겨 만든 바구니 제품, 목공예품, 가죽공예품, 주석을 두드려 만든금속장식품, 도자기 장식품 등 무려 1백가지를 헤아리는 온갖 수공예품들이 즐비하다. 워터포드 페어 에 참가한 수공예가들은 그 제조기술은 물론, 수공예품에 대한 지식, 역사적 중요성등을 감안해 美國전역에서 선발된 명인들이다. 워터포드 페어 는 수공예품을 전시하거나 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르치는 페어 라는데 특징이 있다. 수공예가들은 길거리에 직접 나와앉아관람객들의 질문에 자상히 대답해주고, 또 원하는 관람객들에게 인형을 만들거나 닥나무 껍질을벗기는 방법들을 친절히 가르쳐주기도 한다. 이같은 가르치는 페어 를 위해 워터포드 재단에서는 참가 수공예가들이 페어 기간 동안 최소한 50%이상의 시간을 전시 현장에서 반드시 자리를지키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다른 마을 창고에서는 미술전시회가 열렸다. 워터포드재단에서는 해마다 미술과 사진전람회를개최, 美전역의 미술가와 사진가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공모한다. 52년의 역사 덕분에 그 명성이널리 알려져 작품 수준이 매우 높다는게 주최측의 설명이다.
재단에서는 출품을 원하는 작가들에게 △판매될 작품을 출품할 것 △작품의 가격을 명기할 것을전제한 뒤 1인당 참가비 10달러씩을 받고 작품이 판매됐을 때는 그 가격의 25%를 받는 방식으로재단기금 수익을 늘리고 있다.
워터포드의 힐러리 쿨리 이사장(女)은 마을 입장료나 미술품및 수공예품 판매 등에 따른 수익금의 사용처에 대해 대부분 마을의 건물과 시설을 유지 보수하는데 쓰인다 며 이 건물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이 건물들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각종 행사와 전시회등이 수시로 열리기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쿨리 이사장은 재단이 직접 교육이나 문화행사를 개최하기도 하며 인근 지역 주민들이 마을 건물을 이용해 결혼식을 올리거나 회합을 갖기도 한다 고 말한다.
워터포드 페어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스테이시 페이지氏는 한쪽 가슴에 자원 봉사자를 표시하는배지를 달고 관람객들의 안내에 열심이었다.
저같은 자원봉사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워터포드 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이지요. 자원봉사활동을 하다보면 관람객 가운데 해마다 만나는 단골 손님도 무척 많습니다페이지씨는 이렇게 말하면서 매년 약 1만명의 관람객이 워터포드 페어에 모여드는데 그중 줄잡아 수천명은 1년전에도 왔던 사람들 이라고 소개했다.
〈워터포드(美버지니아州).孔薰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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