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선출등을 놓고 오랫동안 혼란을 겪어오던 대구대가 외부총장 영입이후 교육개혁작업을 서두르는가하면 장단기 발전계획을 세우는등 안정을 되찾고있다. 그러나 李泰榮전총장의 공백이후 교권쟁취 과정에서 밀려나거나 소외된 계층이 있는데다 교수들간의 갈등도 여운으로 남아있는게 사실이다. 李전대구대총장이 지난 88년 치료차 도미이후 이른바 구재단측 의 구심으로서 대구대재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해온 高恩愛 경북실업전문대이사장을 만났다.
-현재 구상중인 사업이 있나.
▲고인(이태영전대구대총장)이 평생의 사업으로 생각하던 장애자복지마을의 조성을 위해 현재사회복지법인 인가작업을 준비중이다. 고인은 장애아 부모들이 자녀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것을보고 재활마을의 조성을 계획했었다. 당시 상당수 장애아 부모들도 기금을 갹출하기로 의견이 모아졌으며 금호강인근에 예정부지까지 물색됐었다. 장애자 전문병원도 고인이 쓰러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구대를 사실상 운영한 입장에서 현재 대구대를 어떻게 보나.▲대구대의 출발은 근본적으로 장애아 특수교육이다. 종합대학으로서 한계는 있겠지만 장애자교육을 좀더 특성화했으면하는 바람이다.
-이태영 전대구대총장에 대해서는 타계직전까지 생사를 두고 소문이 많았다.
▲고인은 임종직전까지 대구대 사태를 걱정했다. 마지막까지 신문과 방송을 보고 들으며 하루종일 눈물만 흘렸다. 대구대사태가 한창 악화됐을때 눈물속에서 눈을 감은게 안타깝다.-이전총장의 생사를 몰라 많은 이들이 소재파악에 나서기도했는데.
▲고인과 나의 사진을 실은 현상광고까지 미국현지신문에 나온것을 알고있다. 미장원에 갔더니누군가가 신문에 나온 사람과 비슷하다고 이야기를 걸어와 알게 됐다. 그이후 아예 두문불출했으며 시장을 갈때도 누가 알아볼까봐 가족들이 색안경을 쓰고 다니기도 했다.
-왜그렇게 소식을 끊었나.
▲고인이 쓰러진뒤 일부학생들이 병원에까지 찾아와 자기들의 주장을 시위하고 강요했다. 미국투병중에도 소재가 알려질경우 학생들이 찾아와 이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대학관계자들에게도 비밀로 해야만 했었나.
▲보직교수등 일부교수들에게는 전화로 근황을 알렸다. 이들이 본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것같다.
-치료기간내내 귀국할 생각은 없었나.
▲고인은 살아생전 대구대가 곧 이태영 이라할 정도로 학교에대한 열정이 강했다. 학교돈으로외국 나들이를 할경우에는 항상 3등석을 고집할정도였다. 임종은 대구대에서 해야한다는 생각을많이 했으나 여러 사정이 허락하지않았다.
-귀국후 대구대 관계자와는 만났나.
▲박윤흔총장과 재단이사장을 인사차 만났다. 고인의 건학정신대로 대구대를 잘 이끌어달라고 요청했다.
-대구대 관선이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학의 관선이사회는 말 그대로 임시이사회다. 학교가 정상화된다면 교육부에서도 관선체제를민선체제로 전환할 것이다.
-대구대에 대한 관심이 적지않은것 같다.
▲고인은 일본 유학시 키운 꿈대로 귀국후 한국사회사업대학을 설립했다. 한사대를 설립하던 초창기에는 온 집안 식구들이 돈 구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혼반지까지도 내놓아야했으며상당수 교수들도 외상출근을 해야했다. 사립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월사금을 내지못해 망신을당하기도했다. 돈이 생기면 모두 학교운영에 쏟아넣는것을 당연히 여기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고인은 직원을 내보내지 않았다. 입학생이 10명 미만에 불과한적도 있었으나 참아냈다. 그렇게 세우고 가꿔온 학교를 어찌 잊을 수있나.
-대구대를 다시 찾을 생각이 있나.
▲당장 대구대를 어찌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또 대학이란 이미 사유물이 아니지 않은가. 대구대가정상을 되찾아 법인이사회가 민선체제로 회복되고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학교에 대한 고인의애정과 사랑을 대신 쏟고싶다.
-대인기피증이 있다는데.
▲유년기에서부터 성년이 되기까지 일본에서 줄곧 생활한 탓에 신혼초기 한국말을 제대로 몰라일본인이라는 오해도 받았다. 한국말에 자신이 없어 사람들을 만나는데 주저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인기피증이 있다는 소문은 억측이다.
-대구대사태이후 원망도 많이 했겠다.
▲섭섭했던 일이 왜 없겠는가. 교수들이 고발을 한 사문서위조건은 올초 무혐의로 끝나기도 했다.모두다 지나간 일이다. 다만 학내사태 와중에 후일 장애아 복지사업을 하려고 교수들의 명의로사둔 일부 부동산들마저 대구대재산으로 집어간 것은 고인의 뜻을 너무 몰라준다 싶어 서운하다.〈徐泳瓘기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