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및 5.18사건 19차공판이 4일 오전 10시 개정됐다.-金相喜부장검사=10.26사건 다음날 鄭昇和총장으로부터 사건 당시 金載圭의 초청을 받아 鄭총장 자신도 궁정동 안가에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까.
▲盧씨=10.26 저녁에 모든 일을 보고받았습니다.
-金부장검사=10월 27일 소집된 비상국무회의 석상에서 鄭총장 행적에 대해 해명할 때 국무위원들이 납득을 했습니까.
▲盧씨=국무위원들중에서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盧載鉉 前국방부장관에 대한 검찰측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宋讚燁검사=전두환피고인은 이 법정에서 12월이전에 증인에게 정승화총장 연행에 대해 3~4차례 건의했다는데 사실입니까.
▲盧씨=건의 받은 적이 없습니다.
-宋검사=증인은 12월12일 총장공관의 총소리를 듣고 한미연합사로 이동한 후에도 尹성민육참차장과 전화통화를 하는등 통신축선상에 계속 있었지요.
▲盧씨=그렇습니다.
-宋검사=증인이 12월12일 오후 10시30분께 崔규하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상황을파악한 뒤 찾아가서 보고를 드리겠다고 전화를 하니 최대통령이 그렇게 하라고말했습니까.
▲盧씨=그렇습니다.
-宋검사=증인은 정총장 연행에 대한 최대통령 재가를 받고나서 사의를 표했습니까.
▲盧씨=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장관직을 그만 뒀으면 좋겠다고 최대통령에게 말씀드렸습니다.
-宋검사=합수부가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의 사전승인 없이 정총장을 연행하고병력을 이동시킨 사실이 있습니까.
▲盧씨=사실입니다. 하지만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습니다.
-宋검사=12.12 당시 윤성민육참차장이 대통령이나 증인에게 보고하지 않고 전군에 비상을 걸고 수기사등 병력출동준비 명령을 내린 것은 정당한 행위입니까.
▲盧씨=참모총장이 없는 상황에서 차장이 그렇게 한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金相喜부장검사가 盧載鉉 前국방장관에 대한 증인신문에 참여했다.
-金부장검사=증인은 당시 장관으로서 정승화총장 연행에 대한 사후재가를 않고계속 버텼으면 됐을텐데 굳이 재가를 해준 이유가 뭡니까.
▲盧씨=유혈충돌등 사태가 악화될 우려가 크고 당시로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여러 가지 사정때문에 재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金부장검사=당시 육본측의 일부 병력출동은 정당한 것으로 봅니까.
▲盧씨=신군부측의 무단 병력동원에 대한 대응조치로서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金相喜부장검사=수경사령관에 임명된 경위를 알고 있습니까. 또 임명되기 전에 정승화 총장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나요.
▲張씨=당시 鄭총장과는 별로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鄭총장 면담시 총장께서인사기록카드 보면서 3년전에 수경사 참모장을 역임했었으니 해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소장중 제일 먼저 진급했었던 점을 감안, 선배 장성들이 천거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金부장검사=全斗煥피고인은 12월12일 오후 6시30분경 유학성, 황영시 장군 등을 30경비단에 초청했다는데 같은 시각에 다른 장소에서 2가지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인은 알고 있었나요.
▲張씨=몰랐습니다.
-金부장검사=연희동 한정식집에서 증인이 술을 많이 마셨다는 주장이 있는데술은 어느정도 마신 상태에서 총장공관 총격전 연락을 받았나요.
▲張씨=식사를 시작한지 20여분만에 연락을 받았고 술은 양주 1~2잔밖에 마시지않은 것으로 기억납니다.
-金부장검사=全피고인이 증인과 鄭병주 특전사령관, 金진기 육본 헌병감을 같이 초청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張씨=만약에 대비한 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동을 봉쇄하기 위한 계획이었겠지요.
-宋讚燁검사=12.12당시 崔圭夏대통령의 경호임무는 계엄사 헌병감에 있었고 30경비단에 대한 대통령 경호실장의 작전통제도 자동해제돼 증인의 작전통제하에있었나요.
▲張씨=그렇습니다.
-宋검사=비상계엄하 30경비단에 특정지역 경비임무와 관련이 없는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노태우 피고인 등 고급장성들이 모여있었던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張씨=잘못된 것이지요.
-宋검사=증인은 12일 오후 8시35분경 직접 현장 확인차 총장공관으로 가던중윤성민 참모차장으로부터 정총장이 납치됐으니 부대로 복귀해 총장 구출작전을수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나요.
▲張씨=그렇습니다.
-宋검사=이어 수경사로 돌아와 30경비단에 장성들이 모여있다는 사실을 확인,정총장의 체포가 수사목적이 아닌 반란행위임을 알아차리고 방패작전의 작전책임자로서 작전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張씨=그렇습니다.
-宋검사=9공수여단, 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의 지원을 요청했다는데 육본에건의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張씨=윤성민 참모차장에게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宋검사=수경사 예하의 포병단에 대해 모든 포는 경복궁을 조준해 포격하라는지시를 한 사실이 있나요.
▲張씨=변호사들이 군작전을 잘 몰라서 나온 말입니다. 포병은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므로 포병사령관의 전문적인 검토를 통해 작전이 이루어지며 포탄도 조명탄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金相喜부장검사=全두환피고인은 盧재현 국방장관이 이미 12월 12일 밤 11시께수경사령관실에 있던 文홍구 합참본부장을 통해 전군에 병력출동 금지지시를내렸다고 주장하는데 그러한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나요.
▲張씨=받은 적이 없습니다.
-金부장검사=증인은 12.12사건 당시 수경사령관을 지낸 피해자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張씨=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없어야 합니다. 30년 선후배가 같은 군복을 입고일하다가 피고와 증인으로 법정에 서다니. (감정이 북받치는 듯 고개를 숙이고잠시 울먹인 후) 인간적으로 따뜻한 위로의 말도 못해 죄송합니다.
검찰측 증인신문이 끝나고 金榮一재판장이 증인신문을 계속했다.
-金재판장=신촌모임에서 수경사로 돌아왔을때 증인이 취해있었다는 이야기가있는데.
▲張씨=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두잔 정도만 마신 상태입니다.
金相喜부장검사 鄭전총장에 대한 신문을 진행했다.
-金부장검사=증인은 金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동향으로서 매우 가까운 사이로 육참총장이 될 당시에도 金재규부장이 추천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鄭씨=그렇지 않습니다. 金부장은 고향이 선산이고 본인은 김천이라 같은 경북이긴 하지만 동향이라고 볼순 없고 78년 봄 1군사령관 부임인사차 한번 만나본 적은 있으나 이후엔 전혀 교류가 없었습니다. 육참총장 추천에 대한 소문도사실과 다릅니다.
-金부장검사=10.26사건 현장에 증인이 있었고 김재규부장이 시해사건의 범인임을 알면서도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아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게됐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鄭씨=당시엔 金재규부장이 사건경위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아 범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金부장검사=대통령 저격소식을 듣고 20사단과 9공수여단등 병력출동을 지시한이유가 뭡니까.
▲鄭씨=청와대 만찬중에 일어난 사건이라 범인이 북한의 간첩일수도 있고 내부인사일수도 있다는 여러 가능성때문에 대북전투태세 뿐만아니라 내란을 방지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金부장검사=당시 10월 29일 보안사령관에게 증인에 대한 조사를 직접 하라고지시했다지요.
▲鄭씨=보다 정확한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본인도 조사를 철저하게 받아야한다고 생각해 조사를 자청했습니다.
-金부장검사=11월24일 계엄확대 회의에서 증인이 박정희대통령시해사건은 국가와 국민전체의 불행은 아니다. 박정희대통령 체제는 잘못되었으므로 시정 되어야 한다 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그날 회의에 참석한 대다수 지휘관들이 반발하고 회의가 중도에서 폐회되고 말았다는데 사실인가요.
▲鄭씨=그런말을 한 사실이 없고 그날 회의는 순탄하게 끝났습니다.
-金부장검사=12월1일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전두환 합수부장과 전창렬 군검찰부장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鄭씨=요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金부장검사=증인은 직무유기죄로 구속된 李재전 경호실차장에 대하여 신복현법무감에게 불기소처분하라고 지시하고 징계처분조차 하지 못하게 지시했습니까.
▲鄭씨=사실이 아닙니다. 법무감이 공소유지가 어렵다며 불기소처분하겠다고보고해와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金부장검사=79년 11월 하순경 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이 3차례나 찾아와 증인에게 권력형 부정축재자 처벌과 재산몰수 조치를 건의해서 그런 조치를 취하라고지시했습니까.
▲鄭씨=민감한 정치문제여서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金부장검사=李후락 前 중앙정보부장이 세계불교대회 한국대표로 참석키 위해스리랑카로 출국하려 하였는데 전두환 피고인이 독단적으로 외무부에 출국금지조치를 취한 사실이 있나요.
▲鄭씨=국방부장관에게 상의해보니 그러한 정부방침이 없다고 해서 합수부장에게 이후락씨가 나갈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李富榮검사=연희동 모임에 초청된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 장군등은 모두 증인계열의 장성들이었다는데 사실인가요.
▲鄭씨=거짓말입니다. 30여년간 군복무중 그들은 한번도 직속부하였던 적이 없었고 총장이 돼서 처음으로 직속부하가 됐습니다.
-李검사=노재현 국방장관에게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경질을 건의한 사실이 있나요.
▲鄭씨=그렇습니다. 12.12가 나기전 일요일 골프장에서 얘기했었습니다.
-李검사=12.12당일 합수부 수사관이 총장공관으로 방문하겠다는 사실을 사전에통보받았나요.
▲鄭씨=통보가 없었습니다. 7시뉴스를 보고 나가려던 차에 보안사 관계자들이찾아왔습니다.
이어 金相喜부장검사의 신문이 이어졌다.
-金부장검사=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연행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가혹행위 또는 신분에 맞지 아니한 부당한 대우를 받지는 않았나요.
▲鄭씨=다음날 오전 9시부터 고문실에서 철의자에 묶인채 말할 수 없는 고문을당했습니다.
-金부장검사=합수부에서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연행된지 이틀만에 김재규의 내란행위를 방조했다고 자백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사실인가요.
▲鄭씨=스스로 자백한 사실은 없습니다. 약 10일이 지난뒤 자신들이 조작한 사실을 받아써보라고 해 함정임을 의심하면서도 받아적은 일은 있습니다.
-金부장검사=군검찰에 송치돼 육군교도소에 수감중일때 이학봉 피고인이 몇차례 찾아왔다는데 특별히 한 말은 없었나요.
▲鄭씨=처음에는 정말 죄가 없다고 생각하면 우리도 끝까지 해보겠다 는 등다분히 협박조로 말했습니다. 나중에는 재판에 잘 응하면 복권도 가능하다 는등 회유적인 말도 했습니다.
-金부장검사=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지낸 군의 원로로서 12.12 사건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鄭씨=군의 생명인 군지휘권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군사반란입니다. 아무런 명분없는 全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반란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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