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每日春秋

음악만큼 영혼에다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있을까. 혁명이나 전쟁기에도 수십권의 이념서적보다 한곡의 감동적인 노래가 훨씬 큰 무기였다. 어떤 시대의 노래에도 이데올로기가 숨어있다.민중가요뿐만 아니라 오늘날 신세대 대중가요에 까지도 어떤 형태로든 이데올로기가 은밀히 도사리고 있다.

불과 1~2년 사이에 재즈카페가 엄청나게 생겨났다. 그 카페들의 이름은 대개 블루 와 관계있다.재즈와 블루! 일반적으로 재즈를 듣기 시작하는 나이는 30대 후반부터였다. 얼마전만해도 20대들은 재즈에 거부감을 보였다. 너무 흐느적거리고 끈적거린다는 거였다. 필자도 그들 또래땐 양희은, 송창식등의 서정가요를 좋아했다. 거기에는 70년대적인 낭만적 이데올로기가 들어있었다. 선과 악이 선명히 구별되는, 그리고 80년대 민중가요에도 명암이 분명했다. 즉 그들 노래에는 옳고그름을 판별할 수 있는 뚜렷한 가치기준이 있었다.

그런데 요새는 20대 초반부터 재즈에 빠져든다. 재즈샤워 라는 퇴폐적 문화까지 있지 않은가. 사회적, 역사적으로 선과 악이 불분명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모든 가치는 상대화되었고 사회구조는혼돈에 빠져있다. 역사는 절망적이다. 이제 누가 역사 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는가. 모두가 거대한 구조에, 누구도 통제 못할 자본의 흐름에 질질 끌려가며 숨가빠 한다. 60년대 후반이후 선진국대도시에서 나타난 음울한 색조가 우리의 도시를 휩쓸고 있다. 더이상 자신이 자기의 운명과 역사의 주체라고 생각하기를 포기한 우울한 세대의 노래가 바로 재즈이다. 한편 재즈의 흐느적거림은 숨막히는 자본의 운동논리에 대한 심리적 저항방식이다. 블루 라는 술집들은 그러한 문화적반군들이 집결하여 숨쉴수 있는 소도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