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每日春秋

갑자기 녹음이 짙어졌다.오동나무 잎이 물기를 머금어 싱그럽고 작은 풋감이 바람에 툭툭 떨어진다. 채마밭엔 풋고추가제법 달렸고 아침마다 노란 호박꽃이 줄지어 핀다. 흰 도라지꽃에다가 조롱박 이파리가 예쁘다.매미 소리 귀따갑고 풀숲으로 참개구리 펄쩍 뛴다. 해바라기 키 자랑하고 모과 열매 부끄러운 듯달렸고 새까만 모기 새끼 사정없이 물어 댄다.

장마라 강물도 불어 강가의 허드레 밭까지 물에 잠겨 투망질하는 사람이 여럿이 보였다. 도랑물이 제법 흐르니 미꾸라지 어디 숨었나 궁금하고 논 맹꽁이 심심하면 합창을 한다. 장마 그치면피라미 잡아 매운탕 끓여야지 벌써 군침이 돈다.

미운 다섯 살 아들놈이 토끼풀꽃 몇 개 따서 아빠 선물 하고 갖다 주고 한줄기 소나기엔 막걸리와 파 부침개 먹고 싶고 몸 찌뿌드드하면 그림이고 나발이고 보신탕 한 그릇에 낮잠 생각 절로나니, 시절은 하 수상하나 마음은 너그럽다.

동네 점방으로 놀러 가니 영감들 몇이 모여 오소리 잡을 궁리를 한다. 한 마리 잡으면 백오십만원 하는데 이놈 잡아 푹 고면 기름이 동동 뜨고 그 국물을 먹으면 겨울 추위 걱정 없다고 날을잡아 오소리 잡으러 가자고 조른다. 오소리는 밤에 능선을 타는데 사냥개 세 마리는 있어야 잡지 하고 한 영감이 거든다.

날이 흐리니 여름밤에 별이 하나도 안 보인다. 태풍 불어온다니 대나무 소리 요란하고 게으른 화가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다. 여름 가고 가을 오면 농부들은 가을걷이에 신명(?) 나겠지만 그림 농사(?)는 언제 수확 있을는지. 우리들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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