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롬멜의 손수건을 생각하며

2차대전중 영국의 의회로부터 적군의 사령관이지만 존경할만한 군인 으로 칭송받았던 독일의 롬 멜 원수(元帥)는 전쟁당시 비염을 앓고 있었다.

진지순찰때도 자주 코피를 쏟았는데 그의 전설적 전쟁 스토리를 다룬 영화 '사막의 여우'에서는 그가 평소 얼마나 부하 장병들로부터 존경과 신뢰 그리고 사랑을 받고 있었는가를 인상적으로 보 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전쟁 막바지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사하라 사막에서 전차를 타고 현지 부대를 시찰하는 도중 장병 들에게 둘러 싸여 전황 브리핑을 듣던 롬멜이 갑자기 또 코피가 흐르자 손수건을 꺼내려 호주머 니 쪽에 손을 넣는다.

그순간 롬멜의 코앞에 예닐곱개의 손수건이 순식간에 내밀어진다. 둘러섰던 장병들이 너도나도 제 손수건을 서로꺼내 내민것이다. 모래바람이 비염을 악화시킨다는 군의관의 권유도 뿌리치고 사막속의 병사들을 찾아다닌 원수(元帥)에 대한 경의였다.

군대의 사기는 지휘관이 존경받을수 있는 신뢰와 용기를 보여주고 장병들은 그런 지휘관으로 부 터 부하사랑을 받고 있다는 신뢰를 지닐수 있을때만 생겨난다. 사기가 오르면 기강은 저절로 선 다.

호우이긴 했지만 비가 좀 많이 왔다는 것 때문에 51명의 장병들이 꽃다운 목숨을 흙더미속에 묻 었다.

어느시대 어느나라 군대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있었을까 그럼에도 천재지변이다. 어쩔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 최대의 보상과 사후 예우를 하라는 국군 최고 통수권자의 당부도 있었다. 천재(天災)라면 천재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민간조직에서나 통할수 있는 논리다. 군대는 모든 조직 관리상태가 24시간 전투상황하에 있어야 하는 특수한 집단이다. 적어도 군대에 있어서 눈과 비와 바람은 언제나 일어날수 있는, 때론 예측불가한 상황까지 곁들 여 변화될수 있는 일상적 조건일뿐 재난이란 이름으로 면책의 변명이 될수 있는 조건은 될수 없 다.

어느 수해 동네 이장(里長)은 폭우가 심상찮게 내릴때부터 마을 방송으로 대피를 경고해 줬다고 했다.

한심하게도 장병들이 희생된 일부 부대들중에선 호우경보는 고사하고 포탄까지 수십톤 유실됐다 고 했다. 무기관리조차 어떠했던가를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기강이 풀렸다고 밖에 볼수 없다. 역논리로 말하자면 기강이 풀린건 군의 사기가 떨어져 있어서 다. 사기가 떨어져 있음은 우리 군부에 롬멜 전차부대와 같은 장성들에 대한 존경분위기가 식어 져 있어서라고 짐작할수 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어봤자 장성들 자리만 TK 에서 PK로 바뀐 감투 개혁속에서는 대다수 영관장교들이 '사기가 떨어졌다' 고 응답하는 여론조사가 나올수 밖에 없고 현역 중사가 은행을 털러 부대를 뛰쳐 나오는 한심한 사건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군대나 정부나 정치권이나 존경과 신뢰를 받으려면 책임감과 무게있는 믿음을 보여야 한다. 51명 의 부하를 흙더미에 묻고도 책임지는 장성은 보이지 않고 천재지변이라는 변명밖에 들을수 없다 면 어떻게 국민의 신뢰받는 군대라 할수 있겠는가.

더구나 수재민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고 해외여행 수지적자가 몇억달러를 넘어선다고 떠들 면서도 마이클잭슨같은 노래꾼불러 오는데 19억원, 그것도 무대 제작비를 합치면 46억원을 쓰도 록 1차 '불허'를 번복해가면서까지 '허가'해주는 정부의 처사 또한 신뢰를 받기엔 무게와 믿음이 없다. 지금 만약 국방장관이나 정부 고위층이 비염에 걸렸다고 치고 코피가 흐를때 선뜻 제 손수건 재 빨리 꺼내줄 병사와 국민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지 궁금하다.

진정한 개혁과 전국민을 그 개혁의 길로 끌어 넣겠다면 휘두르는 사정 칼날의 위엄보다는 신뢰와 존경을 회복시키는 것이 옳은 개혁의 대도(大道)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국민과 부하로부터 손수건을 얻을수 없다면 그들은 이미 지휘관의 권위를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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