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每日春秋

기차 여행을 시작하면 먼저 붉은 망사에 담긴 삶은 계란이 생각납니다. 계란 세개와 맥주 두어깡통이면 아무런 부러울게 없는 여행이 되겠지요.

맥주가 없더라도 쓴 소주 한 병이면 뭐 부족할 것이 있겠습니까? 옆 좌석 사람들을 흘끔 보면서삶은 계란 한 개를 까서 흰 소금에 찍어 게눈 감추듯 먹고 소주 한잔을 목구멍에 탁 털어넣습니다. 술기운이 스르르 번지면 제일 먼저 잊고 싶은 것은 마누라의 바가지 긁는 소리입니다. 정신건강에 조금도 도움이 안되는 잔소리이지요. 삶은 달걀 두개째를 조심스럽게 먹고서 소주 두잔을마십니다. 그 다음으로 잊어버리고 싶은 것은 내가 화가라는 사실입니다.

일상생활과 작업의 틈바구니에서 항상 갈등을 일으키고 즐겁게 그려야 하는데도 악을 바락바락쓰는 것 같아 허탈감이 뒤따라 다니지요. 작품 활동을 지속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꼭 허무의 바다로 헤엄치는 것 같아서 그림 그린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합니다. 남은 계란을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넣고서 소주 석잔을 연거푸 마십니다. 찜통같은 더위와 함께 복잡한 도시를 잊고 싶습니다. 살려고 바둥거리며 남의 눈치를 살피면서 어디 빌붙을 자리를고른다거나 괜히 불쾌지수가 높아져서 같이 활동하는 동료가 미워지는 이 도시 자체를 잊고 싶습니다. 그리고 불그스름한 얼굴과 답답한 마음을 식혀 줄 바다를 향해 달려갑니다.갑자기 다섯살짜리 아들녀석이 초콜릿 세개를 날름 먹고서 아빠 물 줘 합니다. 환상이 깨어지는순간이지만 아! 벌써 바다가 보이는군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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