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40년만에 찾은 임종 직전의 친아버지가 조선인 독립운동가임을 안 한 일본인이 사회적 불이익과 가족의 반대를 무릅쓴 채 뿌리를 찾아 한국인으로 되돌아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82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이 극적인 사건은 오늘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독립운동가 故 홍목(洪穆)선생이 건국포장을 받게 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홍목선생의 활동상은 맥아더 군정이 미국으로 가져간 일본 내무성 경보국 보안과 발간 특고월보 가 우리 정부로 돌아오면서 40년 암흑에서 걸어나왔다. 특고월보(特高月報)는 독립운동을 하던 조선인을 감시하고 탄압한 내용을담은 보고서다.
1920년 7월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에서 태어난 홍목선생은 평범한 유학생으로 일본 주오대(中央大) 법대를 다니다 우연히 만난 베트남 독립운동가로 인해 민족 의식에 눈을 떴다. 43년 1월부터 인도지나동란십년사 를 출간, 조선인유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5백여명의 조선인을 모아 일본 경제와 사회정세를 분석하는 한편, 친일인사의 학도병 징집 권유에 반대하는 등의 활동을 폈다.홍선생의 독립운동은 44년 11월 일본 특별고등형사에게 발각, 투옥되면서 일단락을 맺었다.
당시 그는 고즈 지하루라는 일본 명문가 부인(현재 생존.76세)과의 사이에 젖먹이 아기가 있었다. 부인은 남편의 갑작스런 투옥에 실망하고 놀란 나머지 몇해뒤 아기를 데리고 재혼했다.
그리고 야스노부(泰伸)란 이름의 아기는 어머니의 성 고즈(鄕津)를 갖고 일본인양아버지 아래서 자란다. 명문 와세다대를 졸업한 고즈 야스노부는 일본 굴지의 대기업 미쓰비시사에 입사, 촉망받는 젊은이로 성장했다.
양부가 운명을 달리한 지 몇해 지난 82년, 39세의 야스노부는 어머니로부터 친아버지가 조선인 독립운동가라는 충격적 사실을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해 결국 임종을 눈앞에 둔 아버지를 찾아냈다.
하지만 45년 3월 연합군의 도쿄 폭격을 틈 타 감옥에서 탈출한 부친은 재혼한어머니를 차마 찾지못하고 타국땅에서 62세의 외로운 삶을 마치게 된다.
야스노부는 자신의 조국과 성을 찾기로 결심했다. 주위의 반대는 강했다. 어머니는 물론 부인도 일본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서러움을 아는지라 귀화를 막았다.
하지만 그는 재판을 거쳐 부림(缶林) 홍씨 성을 되찾았다. 한국인 홍태신씨는미쓰비시에서 퇴직당했고 이후 몇번이나 직장을 옮겨야 했다. 조국을 찾은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도쿄 주재 본사 특파원이 전화를 걸어 홍목선생의 독립유공자 선정 소식을 알렸을 때 그는 너무 기쁘다 며 감격스러워했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뒤늦은 건국포장 수상식에 참석할 수 없다. 궁핍해진살림살이가 부담스럽고 54세의 나이에 취직을 위해 치러야 하는 기술자격시험이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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