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寄槁

"全.盧씨 재판을 보고"

세계 정치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직 두 대통령의 법정 세우기, 한국헌정사상 초유의 공판, 역사바로세우기의 준엄한 심판, 성공한 쿠데타의 실패한귀결…. 그외에도 각종 수식어가 동원된 12.12 및 5.18사건 1심 선고공판이 열리던 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종일 뿌렸다.

진실의 준엄한 심판

전 국민은 8월26일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법정에 선 군출신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의 정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낮 12시2분, 실형선고가 떨어지는 순간,만감이 교차하는 그 굳은 두 사람의 표정만큼이나 이를 보는 국민 또한 만감이교차하듯 표정이 엄숙했다. 불과 보름전 애틀랜타 올림픽 생중계를 볼때 희로애락이 교차하던 흥분된 표정이 아닌, 날씨처럼 침울한 표정으로 국민은 그 역사적 순간 을 지켜보았다. 인간의 영욕(榮辱)을 당대에 목격한다는 이면에, 두인간을 향한 분노와 연민을 동시에 느껴야 하는 착잡한 감회가 국민의 얼굴에서려 있었다.

형량이 생각보다 적다, 무죄가 왠말이냐, 광주항쟁의 의미가 희석되었다. 신군부관련자는 이 기회에 각성하라는 시민과 정당의 성토를 들으며 그런 지엽성을넘어, 사필귀정(事必歸正), 심은대로 거둔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교훈이이번 1차공판의 대의이다. 두 전직 대통령과 신군부 핵심세력이 28차례에 걸친법정진술을 통해 당위성을 주장했음에도 군사반란을 통한 정권찬탈 광주민주화운동의 살인행위 에는 반드시 책임을 지겠다는 사죄와 참회가 있어야 했다.그러나 그동안 법정싸움의 지루한 공방전을 통해 그들은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했기에 국민의 분노와 조롱을 샀고, 법의 준엄한 심판이 반성하지 않는 인두겁에 실형언도로 양심을 일깨워 주었다.

해방과 분단, 동족상잔의 전쟁, 학생혁명과 5.16, 연이은 군사정권의 정치적 악순환을 겪어오며 국민은 정의와 불의를 구별하는데 둔감해졌던게 사실이다. 건국후 친일(親日)잔재 청산문제, 김구 선생 암살을 거치며 50년 현대사 속에 미제(未濟)와 미궁(迷宮)속으로 잠적한 많은 정치적 사건의 흑막을 국민은 알고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의로운 심판이다 란 선명한 결과에 이른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 그놈이 그놈 이며, 끼리끼리 해먹기 며, 다 그런 속사정이 있겠지 하며 베일에 가려 용두사미(龍頭蛇尾)되는 현실논리에 체념했다. 정치의 시녀 노릇을 하는 사법부마저 불신해 왔다.

그런 측면에서 두 전직대통령을 법정에 세워 허위와 진실을 명확히 가려내어죄에 따른 벌을 결정한 이번 공판이야말로 헌정 사상 처음이요 후대에 역사적기록으로 물려줄 귀감이라 일컬을 만하다. 한총련의 집단폭력에 단호한 대처를국민적 합의 로 모았듯, 이번 1차공판의 결과야말로 국민적 합의의 공감대를 충족시켰다. 비록 경제.외교분야에 일관성 없는 정책을 감안하더라도 이번의 그릇된 역사적 사건의 진실규명만은 문민정부가 이룩한 성과이다.

TK정서의 행방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이제 10개월이 남았다. 각계각층의 반응은 역사 바로세우기에 이번만은 확실히 본때를 보여야 한다고 이구동성이다. 특히 16년 한맺힌세월을 살아온 광주 시민이야말로 전직 두 대통령의 대법원 확정 판결 후 사면 을 단연 거부하며 만약 그런 타협의 경우 본때를 보이겠다는 결의에 차 있다.

대구권 민심은 이번 1차공판을 보며 당연한 귀결, 그러나… 하는 아쉬움과 착잡한 갈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구권은 건국후 4명의 대통령중 3명을배출하는 선택의 영광을 입었고, 그들이 모두 군출신이었기에 오욕을 감수해야했던, 그야말로 영욕이 겹친 30여년 세월이었다.

정권 창출의 불법성, 재임기간중 공과를 떠나서 3명 대통령에 기대했던 그동안대구권 민심은 차라리 소박했다. 대통령직에서 탈없이 물러나 낙향하여 서민과함께 노년을 보내는 인간적 모습의 염원은 한사람이 저격으로 비명횡사, 두 사람은 국사범이 되고 말았다. 조상을 잘못둔 후손의 가슴치는 괴로움이 왜 없겠으며 그들이 참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대신 속죄양이 되겠다는 비감 또한 가슴을 저밀 것이다.

한편 그동안 TK정서 란 두루뭉실한 표현으로 드러난 집권당에 등 돌리기가

끝내는 TK수난의 절정이랄 수 있는 이런 결과론에 이르렀다는 일말의 울분도

감지될 수 있다. 간음한 여자를 민중이 돌로 치려했을 때 죄 없는 자부터 돌로치라는 예수의 비유를 끌어대며 이 세상에 허물없는 자가 누구며, 원수까지 사랑해야 된다는 극단적 동정론도 화두로 떠오르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 이 나라를 사랑하고 우리의 미래에 기대를 건다면, 이 역사적 재판이야말로 하늘 아래 부끄럼없는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80년대 그 치욕을세월을 견뎌내며 민주화의 열망을 성취했듯, 우리는 잘못된 관행 을 응징하는참다운 민주국민임을 역사의 장에 새겨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불행한 역사의뜻깊은 교훈을 자라나는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소설가.김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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