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每日春秋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그치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해바라기는 이미 농구선수 키보다 더 자랐고 빨간 고추는 따서 말리기 시작했다. 누런 호박이 나자빠져 있는 곳에 다시 푸른 호박 덩이가 생기고 있다. 아직 가을 징조는 뚜렷이보이지 않으나 우선 기온이 한여름보다 뚝 떨어져 살 만한 기후다.

매미 소리 여전하고 고추잠자리 여러차례 공중을 배회한다. 감알이 굵어졌고밤송이 제법 달려서 이번 추수 무렵이면 먼저 본 놈이 임자일 것이다. 목공소에서는 목수 아저씨 못치는 소리가 탁탁 들린다. 어서 돈벌어서 딸아이 시집보내야지 하는 소리같이 들린다.

흰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이름모를 새 한마리 원을 그리다가 어디론가 날아간다. 햇볕은 따갑다. 이 따가운 햇볕이 식물의 열매를 익게 하고 농부들의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게 할 것이다. 들판 너머 보이는 대가천에는 이젠인적이 드물다. 여름 동안 북적거리며 민물고둥이나 피라미를 잡던 곳에 까만염소 한마리만 보인다.

사람들이 이렇게 계절에 민감한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인생도 계절처럼 늘 청춘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시절 되돌아보니 봄여름처럼 정신없이 달려 온 것같다. 그림이 뭔지 예술이 뭔지 몰라도 후회는 없다.

이젠 삶의 새 전략이 필요한 것 같다. 더욱더 냉정해지든지 아니면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작업실의 그림들이 우울해 보인다. 감정이입이라 사랑이 부족한 탓이다.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는 이도 있지만 나는 한여름의 끝에 서 있다. 개 같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누군가에게 연애 편지라도 쓰고 싶다.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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