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시험때 면접이라는 절차가 있다. 지망자를 묶어두는 요식 행위일뿐 합격여부와는 사실상 관련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간혹 면접에 참여하게 되면 정해놓고 물어보는 고정질문이 있다. 중고교를 통틀어 가장 감명깊게 읽었거나 인상적인 책을 물어보는 것이다. 친하게 어울리는 친구못지 않게 책도 사람됨에대한 하나의 지표가 되어 준다. 또 요즘 학생들의 독서 경향이 궁금한 탓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대체로 읽은책이 없다. 국내 작가의 단편소설을드는 경우도 있고 들어보지도 못한 작가의 작품을 거명하여 알고 보면 이른바하이틴 로맨스 인 경우도 있다. 근자에는 만화책을 드는 경우도 생겨났다. 학과공부에 여념이 없어 책을 통 읽지 못했다는 변명성 실토도 적지 않다. 폭풍의언덕 이나 대지 같은 책을 들면 그나마 윗길이다. 특정 시기의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그래도 고교 졸업생 상위권 학생들의 응답치고는 황량하기 짝이 없다.
책의 배경도 중요
그러나 어쩌다가 뜻밖의 답변을 듣는 경우도 있다. 작년의 경우인데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 을 드는 학생이 있었다. 특이한 경우여서 그 밖에 또 없느냐고 했더니 없다고 한다. 별로 읽은 책이 없었다. 어떤 교사가 권고해서 읽었는데 감동적이었다는 것이 그 학생의 계기 설명이었다. 책의 배경등에 관해서도 별 아는 것 같지 않았다. 여러가지 생각케 하는 바 있었다.
해방 직후 당시 중도 좌파쯤의 노선을 걷고 있던 서울신문사에서 낸 신천지란 월간지에 이 책이 연재된 적이 있었다. 그 후 금서가 되어 있다가 80년대후반에 뒤늦게 책이 나왔다. 알다시피 스노는 몰리고 있던 시절의 홍군(紅軍)의상황을 세계에 알려준 그쪽의 대서방 창구이자 이념적 동반자였다. 문화대혁명기에는 또 강건너 저편 이란 두꺼운 책을 써서 모택동노선의 홍보를 하였다.70년대초 미국체재시에 이 책을 읽어본 일이 있다. 제목은 다 잊어버렸지만 요지만은 기억하고 있다. 집권후 당과 정부 조직에는 비능률과함께 인민위로 군림하려는 관료주의가 팽배하였다. 지도자는 숙정의 필요성을 느꼈고 毛의 권위를 가지고서는 위로부터 숙정을 단행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인민의 에너지를 혁명적 열기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주변부에서 실권파의 본부를 치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시도한 것이 문화대혁명이라는 것이었다.
서방 세계에서의 모택동 신화 유포에 스노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가 불치의 병에 걸렸을때 중국당국은 암에 특효가 있다는 한약을 제공하는등 예우를다하였다. 그러나 81년6월 중국공산당의 이른바 육중전회(六中全會)가 채택한역사결의(歷史決議)는 문혁(文革)이 건국이래 최대의 좌절과 손실 이라며 지도자가 잘못하여 일으켜 당과 국가와 각 민족인민에게 큰 재난을 야기시킨 내란 이라고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개인.사회 모두 불행
중국의 붉은 별 이나 강건너 저편 만을 읽은 독자들은 모택동이나 문혁을 미화하고 이상화하며 어떤 환상을 갖게 되기가 쉽다. 사이먼 리이즈라는 필명으로 문혁에 관해 중국의 그림자 란 책을 74년에 낸 벨기에 출신의 중국문화연구자는 역사결의 에 앞서서 그 실체를 소상하고 진실되게 밝혀주고 있다. 이런 책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우리 지적 풍토의 편벽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의 실제 관찰과 분석보다도 피상적 대중적 르포가 독자를 사로잡는것도 내남할것 없이 우리 시대의 문제점이다.
중국의 붉은 별 을 가장 감동적인 책이라고 말한 수험생의 뒷소식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최초의 우연에 향도되어 계속 그쪽 책만을 읽거나 그 영향권에 있다면 편벽되고 시대착오적인 현실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편식이 몸에 해롭듯이 지적 정신적 편식 현상도 해롭고 위험하다. 복합적인 원인에서 야기된 사회 현상을 단일한 원인으로 축소 환원하는 것은 옳지않다. 그러나 일부의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지적 편식현상은 본인을 위해서나사회를 위해서나 크게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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