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每日시론

"장애인 삶의 質을 위해"

이제 삶의 질을 물질적 풍요나 과시적 소비형태에서 찾던 시대는 지났다. 그 대신에 정신적 교감과 심리적 유대를 통한 자기정체성 확립및 자아실현이 소중한 시대로 들어섰다. 하지만 고속 성장사회의 화려한 이변에는 어려운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장애인들도 그 가운데 속한다. 장애인들의 60%%가 경제적 어려움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고 한다. 삶의 질을 외쳐대기에는 힘이 달릴 정도로 삶의 양조차 채워보지 못한 실정이다.

아직도 삶의 양이 문제

한때 자동차 소유는 부의 상징이었다. 그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금년 들어 대구시내에도 수입차 등록대수가 1천대를 벌써 돌파하였다고 한다. 이 수입차 가운데 배기량 2천5백㏄이상의 대형차량이 52.6%%를 차지하고 그 주된 구입동기는 신분의 전시효과 쪽보다는 충돌사고와 같은 유사시에 탑승자의 안전을 조금 더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누가 장애인의 삶을 스스로선택하여 살고자 하겠는가. 생활고와 인간적 소외감은 말할 것도 없고 갖가지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일은 올림픽에서 입상하는 것 못지 않게 힘겨운 일이다.보건복지부의 95년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수는 백만명을 넘어서서 전체 인구의2.35%%에 해당한다. 최근에 이를수록 출생후 각종 사고로 인한 장애인이 급증하는 추세이며 이처럼 질병이나 교통사고 및 산업재해와 같은 후천적인 요인들에 의해 장애인이 된 경우가 거의 9할에 이른다. 결국 일상생활이 복잡하고 행동반경이 넓어진 만큼 크고 작은 위험들이 우리 주변에상존하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 아무리 조심한다해도 불의의 사고를 겪을 확률이 점점 더 높아져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개인적 불행을 운명으로 돌려 체념하거나 또는 피해보려고 이른바 전통적 미신행위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항존하는 위험을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절실히 아쉽다.

결코 남의 얘기 아니다

장애인 복지에 관한한 우리 현실은 아직도 미흡한 점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예로서, 장애인 선수들은 올림픽 입상자의 연금혜택에서 일반 선수들의 1/3수준에 머문 처우를 받는다. 장애인들에대한 이러한 제도적 차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심마저 경제적 수준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해가지날수록 인색하기 그지 없는 형편인데, 금년도 애틀랜타 장애인올림픽 관련보도의 양이 92년 바르셀로나 장애인올림픽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상황은 일반올림픽 관련보도와 비교했을때 장애인올림픽에 대한 방송시간 할애정도는 너무나 낮아 공분을 자아낼 지경이다. 애틀랜타 일반올림픽에 대해서는 각 방송사들이 시차를 이유로 내세워 밤을 새우다시피 중계를 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앞다투어 모으고자 애쓰지 않았었던가. 실제로 우리 선수들이 선전하는것을 지켜보면서 진한 감동을 맛본 국민들이 많았다. 더 높게, 더 빠르게, 더 힘차게 의 구호가시사하듯이 일반올림픽은 인간의 신체적 가능성을 확인해 주는 자리라고 한다면, 오히려 인간정신의 승리를 내건 장애인올림픽에서 더 함께, 더 느끼고, 더 끝까지 임하는 장애인 선수들의 모습이 더욱 진지한 감동을 자쇈

틂오 분명하다. 이런 감동적인 장면의 보도를 태만히 했던 우리 방송사들은 소중한 삶의 기회를온 국민으로부터 빼앗아 버린 죄가 절대로 작지 않다.

언론매체부터 관심을

장애인 삶의 질 향상은 결코 남의 얘기로 미룰 수 없다는 뜻에서, 외제 승용차 구매자들에게 장애인복지세를 매기는 일에 방송사들이 발벗고 나서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무튼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을 해소해가는 데는 방송매체만큼 큰 영향력을 지닌 것은 없다고 본다. 앞으로 그 영향력을 조금도 아낌없이 발휘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올해 가을의 문턱에서 방송의날을 기념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런 바람이 아직도 유효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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