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오도관 의 모태가 된 육군 29사단은 이크 부대로 불렸다. 이크 란 말은 사람들이 놀랐을 때 외치는 소리 아이쿠 , 이크 에서 유래됐다.
최홍희 장군은 29사단 초대 사단장으로 부임하면서 태권도로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자신의 부대를 이크 부대 로 명명한 것이다. 오도관 경북본관 1대 관장 조영희 선생(63.영천금호호산주유소대표)은 군생활 4년간 이크부대 마크를 달고 태권도 실력으로 3.7.9 사단 장병들을놀라게 하며 태권도 보급에 앞장섰다.
조영희 관장은 제대후 고향인 영천으로 돌아와 오도관 영천지관 간판을 달고 헌병학교 및 경찰서 위촉무도사범으로 10여년간 활동했다. 이와 더블어 상이군인분회사무실을 빌려 태권도를 배우려는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가르쳤다.
경북 오도관의 맥은 1대 조영희-2대 김성복(63)-3대 정구종(63)-4대 박동찬(구룡사 스님)-5대 김상식(65.전 경북태권도협회부회장) 관장으로 이어진다.
경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제5대 중앙본관장을 역임한 곽병오 선생(50) 역시 경북 오도관의 빼놓을 수 없는 중심인물이다. 곽병오 관장을 이어 제자인 최대환 경주태권도협회장(50)은 지금도 경북동부지역의 태권도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군에서 뿌리가 내린 초기 오도관은 다른 관(館)과는 달리 직접적인 스승과 제자 또는 선후배로 구성되지 못했다. 군에서 혹은 군인들로부터 태권도를 익혔다는 공동점이 있을 뿐이었다.임규홍 대구태권도협회부회장(50)과 서보윤 황금체육관장(57)은 초등학교 시절 육군50사단(달서구장기동) 장병들로부터 처음 태권도를 배웠다. 육군 29사단에서 시작된 태권도가 전군으로 확대되면서 군부대 주위의 민간인들에게도 태권도를 배울 기회가 주어졌다.
군부대 태권도 사범들은 일과를 마친뒤 태권도를 배우려는 이웃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료로가르쳤다. 물론 승단심사도 이뤄졌다. 하지만 심사간격이 6~8개월 이상 걸리는데다 엄격해 유단자가 되기까지 4년이 소요되기도 했다.
경북(대구)오도관 발전에 기여한 김영곤 전대구태권도협회전무(50)와 윤점수 보라매체육관장(50)은 대구 K2에서 근무한 공군출신이다.
경북영천 출신인 김영곤 관장은 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오도관과 간접적인 인연을 맺었다. 형이조영희 선생으로부터 태권도를 배운 유단자여서 김영곤 관장은 초등학교때 형에게 기초를 배울수있었다. 본격적인 태권도 수련은 공군에 입대한 68년 5월 이후였다.
윤점수 관장이 대구공군부대에 배치를 받은 것은 김영곤 관장 보다 다소 늦은 68년 9월이었다.윤관장은 군입대전에 이미 경남진주 무덕관에서 태권도를 익힌 유단자였다.
다른 관(館)에서 태권도를 배운뒤 군에 들어와 다시 오도관 체제 아래서 수련을 쌓은 사람중일부가 제대후 처음 배운 관(館)에 흡수되지 않고 오도관 으로 그대로 남았다. 윤점수 관장도 그중 한사람이다.
당시 K-2에서는 박영래 사범의 지도 아래 군체력증강사업의 일환으로 입대전에 태권도를 배운사람들을 모아 태권도 지도자 를 양성했다. 태권도 사범 후보생은 한국군 40명과 미군 10명이었다. 김영곤.윤점수 관장 역시 이 팀에 합류했다.
이들은 평소에 자기수련을 하면서 군수사령부 장병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사령부 체육대회때면 격파와 품새 등 태권도시범이 단골메뉴로 끼였다. 김영곤.윤점수 관장은 단연 돋보였다.드디어 71년 김영곤.윤점수 관장은 공군본부 수석사범으로 발탁, 대전교육사령부로 떠났다. 대전교육사령부에서는 전공군의 3단 이상 유단자를 모아 특별훈련을 시켰고 김영곤.윤점수 관장은 여기서 교관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윤점수 관장은 72년 동구 용계동에 보라매체육관(80년말 신천동으로 옮김)을 열었고 김영곤 관장은 한해뒤 동구 효목동에 화랑체육관(90년 경산으로 이사)을 시작했다. 아직 군인신분이었기 때문에 조회 및 점심시간때는 군인.군속을 상대로 태권도를 지도하고 퇴근후 자기 도장에서 일반인들을 가르쳤다.
초등학교 가을운동회가 열리면 군 및 도장에서 동원된 수백명의 시범단이 화려한 태권도를 선보였다. 윤점수 관장은 76년, 김영곤 관장은 78년 각각 군복무를 끝냈다.
63년 오도관 중앙본관이 설립되고도 초창기 경북(대구) 오도관은 뚜렷한 관(館)체제를 갖추지 못한채 산발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70년대 중반 윤점수(50).김영곤(50).임규홍(50).최대환(50) 관장이핵심인물로 떠오르면서 지역 태권도계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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