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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시론

"國學 교육의 가치"

세계화의 슬로건이 학교에도 밀어닥치고 있다. 변화는 행정규제의 완화와 대학간 경쟁 강화로부터 시작하여 세부적인 교과목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곳곳으로파급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국제화 정보화 전문화하는 추세에 발맞추어 교육또한 개혁되어야 한다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그 개혁이 지극히 기능주의적인 단견(短見)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학 교육을 강화하면서 중고등학교의 국사 시간은 대폭 줄이겠다는 작금의개선안은 꼭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정부가 주도하는 교육개혁이대단히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넋나간 세계화

세계에서 우리 만큼 영어에 대해 갸륵한 국민이 없다. 땡빚을 내서라도 어학연수는 보낸다는 것이 시대적 대세가 되고 있다. 대체 영어를 잘 하면 저절로 세계화가 되고 국제경쟁력도 생긴다는 이 헛소문은 어디서 생긴 것일까. 그런 논리라면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인재들은 필리핀 학생들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필리핀에서 방송국 PD를 하다왔다는 아저씨가 배달해준 짜장면을 먹으며계속 머리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는 산업의 지식 집약화가 세계적인 규모로 진전되면서 경제적 일체화와 정치적 다극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지식의 생산능력과 투철한 국민의식에 있지 막연한 영어 구사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민족의 문화적 정보의 보고이며 국민의식의 원천인 국학 교육을 축소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넋나간 세계화 이다. 우리는 지금 지식사회의 도래와 인재에 대한 사회의 수요의 문제를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계화의 위험은 그 표피적인 이해의 맹목성에서 온다. 인간은 늘 선택하면 발전하는 동물이다. 자신의 머리로 심사숙고해서 자기 앞에 주어진 가능성들을견주어 보며 결국은 뭔가를 선택하여 행동할 때 남과는 다른 보람있는 결과를얻을 수 있다. 지금 영어를 잘 하는 황색의 유럽인 들은 아시아의 모든 후진국에 빗자루로 쓸어낼 만큼 많다. 그들과 똑같은 멘탈리티를 가지고는 절대 그들보다 더 나은 세계화를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 식의 가능성을 선택해야하며 그 가능성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그 문화가 세계와 맺는 역사의 이해가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리식 선택해야

지금은 정보가 물질을 대신하여 재화로서의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이며 우리는이미 동양의 문화적 정보에 의한 재화의 창출을 실례로서 목도하고 있다. 작게는 의식주 방면의 각종 유행으로부터 아시아적 풍정의 디즈니 영화, 예술상품,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 카오스이론, 생태주의, 환경이론의 조류를 타고 문화전반에서 복권되는 동양의 정신적 가치들이 그것이다. 우리가 교육개혁을 통해재고해야 할 가장 중요한 방향은 지식 생산을 향한 경쟁을 촉진시켜 국학 교육의 창의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말하는 화제이며, 화제 속에 담긴 창조적인 정보의가치이다. 외국어 구사력은 창조적인 사고력과 정보처리 능력에 결합될 때만비로소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의 교육개혁은 이 본말을 전도시키고 국어와 국사, 한국철학 등 국학 교육의 영역을 편협한 민족주의적 사고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같은 사고야말로 영국이 근대의 개막을 선도하고 미국이 자유세계의 경찰이었던 구시대의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세계화는 오늘날 거대한 역동성이 대두되고 있는 아시아적 세계를 끌어안으며 그 고유성으로세계에 접근하는 우리식의 독자적인 비전이 되어야 한다. 국학 교육의 가치가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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