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환교수의 논문통해 밝혀"서적의 상업적 유통이 시작되고 서점이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일까?임진왜란을 계기로 중국서적에 대한 관심이 증폭돼 17세기 초반에 서적중개상까지 등장, 본격적인 서적유통이 시작됐고 서울 장안에 서점이 생긴때는 18세기말엽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부산대 강명환 교수(한문학과)는 최근 조선후기 서적의 수입.유통과 장서가의출현 (민족문학사연구 제 9 호)이라는 흥미있는 논문을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이와함께 19세기 중반에 이르면 종각과 광통교(광교)일대, 그리고 오늘의 세종로와 태평로 일대에 서화와 서적시장까지 형성됐다는 것.
강교수는 18.19세기 중요한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수만권의 책을 소장한 장서가가 출현, 이를 생활취미, 생활문화의 하나로 발전시켰다고 적고있다.
경화세족(京華世族.서울에 대대로 사는 양반가문)들 중에는 중국 북경의 거대한서적시장이었던 유리창(琉璃廠)에서 한꺼번에 수천권의 책을 구입, 수만권씩 소장한 장서가가 부지기수였다는 것.
허균의 경우 1614년과 이듬해 북경에 가 4천권의 책을 사왔고 영조때 영의정이었던 이의현은 1720년에 1천4백16권의 책을 사왔다. 대표적인 장서가로는 4만권이상을 소장했다는 순조때 영의정 심상규(1766~1838), 3만~4만권을 소장했던풍양조씨 세도가 조병귀(1801~1845)를 비롯해 숙종때 영의정을 지낸 최석정, 영조때 우의정 원인손, 순조때 영의정을 지낸 이시수 등 이름난 장서가들이 많았다.
역관이 북경에서 책을 수입해오면 서쾌(序僧)라는 중개상이 국내판매를 맡았고선비들은 서반(序班)이라는 북경의 서적중개인을 통해 책을 사오기도 했다.
강교수는 중국서적의 대량유입과 장서가의 출현은 소설의 유행과 문체의 변화,고증학풍의 성립 등 18.19세기의 문학과 학문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며 이는 나아가 정권과 체제의 안정을 동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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