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귀순자에게 듣는 오늘의 北韓

"최첨단무기 實戰배치 완료"

북한에서 최고의 음향기기전문가로 일하다가 지난 5월 귀순한 과학자 정갑열(鄭甲烈.45)를 만났다. 정씨는 과학자답게 북한의 과학기술분야의 실상을 상세하게, 긴 시간동안 다각도로 설명했다. 북한은 전자전 장비등 첨단무기에도 일찍 개발을 서둘러 실전배치를 완료한 점등 일반의 인식과는 다른 증언을 했다.-북한 과학기술정책 기조가 과학연구사업의 주체성 확립과 과학자및 노동자의창조적 협조 강화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요.

▲정책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사업의 주체화는 80년대 들어서면서 완전히 실패로 끝나버렸습니다.

북한은 당초 경제기조로 제철등 중공업을 기본공업으로 주체화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중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용매인 코크스없이 야금공업을 확립한다는 것이 주체공업입니다. 이를 북한의 박태홍이라는 박사가 실험에 성공하자 북한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평남남포시 강서구역에 413제철소를 건설했는데의도한대로 제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경공업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습니다. 북한에서는 중요한 비날론(나일론)공업의 주체화로 원료인 원유(原油)를 쓰지 않고 북한에 풍부한 석회석을 쓰는방법을 주체화로 선정했습니다. 이 역시 실험에 성공하자 연산 2억t의 2.8비날론공장을 완공했지만 실험대로 제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공장 건설시 김일성이 순시를 와 인민의 생활은 완전히 풀린다 고 큰소리를 쳤었어요.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같이 중요한 정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게 선뜻 이해되지 않네요.

▲근본적으로 체제모순 때문입니다. 북한은 정치(黨)가 과학기술부문에 손쉽게개입하는 체제입니다. 주체화과제를 맡은 연구사들이 실험에만 성공해도 이를지켜보던 정치지도원들이 무르익지 않은 것을 김일성에게 보고해 신임을 얻으려고 합니다. 당간부들은 김일성 김정일에게 기쁨을 줄 수 있겠다 싶은 것이면뭐든지 달려가 즉각 보고합니다.

-정치지도원들이 김일성에게 잘보여 점수를 따려다 국가사업을 망쳐놓은 거군요.

▲그렇죠. 농업만해도 그렇습니다. 생전에 김일성은 농업전선의 최고사령관 을자처했어요. 70년대 생겨난 주체농업이란 총인구는 몇명인데 1인당 얼마를 먹으므로 제한된 면적에 몇포기를 심고 소출은 얼마이어야 먹여살린다 는 식입니다. 사실 80년대 북한주민들은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고 비단옷을 입혀준다 는구호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은 이런 사업들이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북한의 재정에 심대한 타격만 입혀 경제는 80년대말부터 오그라들기 시작한거죠.북한경제에 큰 타격을 준 것은 또 남포갑문과 평양축전으로 평양축전은 축전개최경험이 있던 구소련이 경제적 악영향때문에 개최하지 마라 고 강력하게 충고했습니다. 북한은 서울올림픽때문에 이를 듣지않고 무리를 강행해 악화시켰습니다.지금 북한에 남은 것은 확대재생산되지 않는 서해갑문과 군수산업뿐입니다. 93년말 김일성은 농업 경공업 무역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 당이 틀어쥐던 이분야를 정무원에 넘겼습니다. 정무원은 경제분야 두뇌들이 모여든 곳이지만 돈과 권력이 없어 수십년동안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금광 제련소등 돈이 되는 것은 모두 당이 쥐고 있고 외화벌이사업 대부분도 당이 쥐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값이 나가는 것은 군(軍)이 쥐고 그다음으로는 보위부 안전부가 갖고 있습니다.

-북한의 과학기술분야는 어느정도 군사분야에 기여하는지 궁금합니다.

▲북한은 군수분야에 중요한 것이라면 무제한적으로 투자를 합니다. 저는 평남평성지구 국가과학원연구단지 물리연구소에서 연구를 했는데 그곳에서는 레이저무기까지 연구했습니다. 투자가 엄청났어요.강릉에 침투해 화제가 되고 있는잠수함을 북한은 70년대말부터 건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물리연구소에서초음파음향탐지기(SONAR)를 연구, 개발했습니다. 이 개발을 위해 덴마크

회사에서 비싼 음향측정설비를 일시불로 사들여와 연구에 이용했습니다. 이 음향탐지기가 북한의 잠수함에 탑재된 것은 물론입니다.

북한은 또 80년대에 열추적센서를 개발, 실전에 배치했습니다. 95년 미군헬기가실수로 북방한계선을 월경, 불시착했는데 사실은 북한군의 열추적미사일에 맞아격추된 겁니다. 북한은 각종 로봇도 80년대 이미 개발했습니다. 독일 벤츠승용차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아마도 북한일 겁니다. 그런데 차에 흔하게내장된 오디오는 벤츠를 타도 대부분 볼 수없습니다. 벤츠사하고 그렇게 계약한 겁니다. 사람이 사는데 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오디오는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것처럼 50년동안 적화통일에 매달려온 북한은 이에 필요한 것에만 간신히 투자한다고 보면 됩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북한군이 재래식무기에서만 앞서고 있다고 아는데 정선생의 말은 충격적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과학기술이 민간분야에는 어느정도 기여하고 있습니까.

▲북한은 과학기술분야에서 군사용이라면 투자를 아끼지 않지만 민간쪽에는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투자할 여력이 없고 첨단설비를 개발하더라도 침체된경제가 수용할 수도 없구요. 인민무력부장이었다가 죽은 최현의 맏아들 최용택이 대학생 현장기술자들을 모은뒤 일본에서 반도체 생산 연구설비를 들여와 반도체공업에 필요한 IC(집적회로)를 개발했지만 아무데도 써먹지 못했어요. 대

전대덕연구단지에 가보니까 고온 초전도체를 개발중이던데 북한에서는 80년대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개발에 성공했지만 고급기술의 사용처가 없어 무용지물이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북이 앞선셈이지요.

-북한의 과학기술에서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비율은 어느정도인지요.

▲정책상 기초과학에 배려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군사과학에 투자하기 바쁘기때문에 전혀 투자가 없습니다. 북한의 연구소들은 지원받을 수있거나 돈이 되는 것만 하는, 생존경쟁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북한 과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돈 대주면 좋고 안대주면 자체로 한다 라는 구호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돈안대준다고 안하면 혹독한 자아비판을 해야합니다.

-당의 지원이 없으면 어떻게 연구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자기 재산을 팔아서라도 해야합니다. 국책공장에 술 담배등 뇌물을 써서 부품을 얻어 연구를 이어갑니다. 북에서는 박사들에게 매달 담배 30갑씩 지급되는데 김일성대학 신용화박사의 경우 자신은 손도 못대고 부인이 시장에서 1갑당 계란 3~4알씩 바꿔옵니다. 또 보름에 한번씩 함경도로 가서 쌀을 얻어오는실정입니다.

-성분 나쁜 북송교포출신이기때문에 연구원이 되는데 지장은 없었습니까.

▲충성심이 강한 것으로 인정돼 준박사(석사)까지 받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박사과정에 들어가려니 한계로 작용하더군요. 그때 이 체제에서는안되는구나, 이래서는 진정으로 인민을 위한다고 할 수없다, 내 능력을, 내가 하고싶은 연구를 무한정 할 수있는 곳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대한 선생의 평가는.

▲국가차원의 투자가 엄청난데다 외국과의 첨단정보교환이 빨라 놀랐습니다.연구원들의 의욕 지식도 높아 놀라운 결과를 내리라 생각합니다.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북한의 전쟁도발여부, 붕괴여부및 속도에 대해 관심이높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북한이 더이상 몰릴 곳이 없다, 이판사판이다 생각하면 전쟁을 일으킬 겁니다. 자체붕괴는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북한주민들은 40년동안 유일사상에 물들어왔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를 조금 알게 됐지만 무료교육, 세금없는 사회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겁니다. 그러나 개방에 대한 열망은 높아인민들도 둘만 모이면 개방하든지 아니면 전쟁을 해서 빨리 결단을 보자, 목소리를 높입니다. 배고픔 때문이죠.

-귀순자들이 줄이어 오면서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가족간, 사회적으로 견딜 수없는 문제가 있어 넘어오는 것은 아닌가하는 곱지않은 시선이 있는데요.

▲(웃으며)그럴수도 있겠죠. 저는 그러나 체제 환멸이 너무커, 마음껏 연구할수있는 환경을 찾아 넘어왔습니다. 가족들은 산수갑산 수용소로 끌려갔겠지만10년만 참으라고 말합니다. (눈가를 닦은뒤)10년내에는 통일이 됩니다. 그때면가족들을 다시만나 잘 살 수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9월 한국에서는 처음인 추석때, 심하면 하루씩 걸리는 자동차행렬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한국은 새처럼 날아가고 싶은 소망이 실현된 사회입니다. 북한에서는 하루안에 갔다올 수있는데만 귀향이 허용됩니다. 북한은 인민을 머저리, 로봇으로 만든 사회입니다.

▨정갑렬박사 약력

▲96년 5월31일 귀순 ▲76년 10월 김일성대학 물리학부 일반물리학과 졸업 ▲89년 10월 문화예술 평양대극장 음향기류 실험실장 ▲91년 10월~96년5월 문화예술부 메아리음향사 음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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