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북한 최대 무역상사인 대성총국 유럽지사장을 지낸 남편 최세웅씨(35)와 함께 귀순했던 전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 신영희씨(35). 서울 생활 10개월을 맞은 신씨는 제한된 자유가 보장되는 예술인으로 활약한데다 남편과 함께오랜 영국 생활을 한 탓인지 북에서 왔다 는 자취를 찾기 힘들었다. 어느새주부와 어머니, 아내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신씨를 만났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들 창혁(초등학교 2년), 딸 송희(유치원)를 등교시키고 남편 최씨의 출근을 돕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TV도 보고 시장도 다녀오고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를봅니다. 높은 물가에 놀라기도 하지만 한달에 한번 꼬박꼬박 통장에 입금되는남편 월급을 확인하며 기쁨도 느낍니다.
-북한에서 생활은 어떠했는지. 예술인의 생활수준은.
▲일반적으로 괜찮은 편입니다. 사회적으로 대우가 좋아 자식들을 예술시키려고 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김정일의 배려가 있고 외국에 나가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실력이 있다고 무조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천명중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1, 2명을 제외하면, 누가 외화돈을 뇌물로 많이 고이느냐(바친다)가 중요합니다. 외화는 외화교환소에서 국제적 환율에 따라 외환바꾼돈 으로 쉽게교환할 수 있습니다. (신씨는 이를 가리켜 외화가 빛을 내고 있다고 했다)
-북한에서 예술인 양성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1개도에 예술학교가 1개씩 있습니다. 일단 인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입학자격은 주어지는데 저는 중학교 1학년때 남포예술학원 1기로 입학했습니다.집에서는 반대했지만 학생축전, 서클소조(소모임)를 통해 연습을 많이 했고 정말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예술학교는 보통 무용과, 성악과, 미술과(산업, 조선화), 기악과(양악, 민족과)로 나뉘는데 예과2년, 전문부 3년, 고등부 3년등 모두 8년을 다닙니다. 다만 무용과는 5년이면 졸업을 하게 됩니다. 연극, 영화 분야는 평양에 연극영화대학이 한 곳 있습니다.
-졸업후에는 어떻게 활동합니까.
▲중앙예술단체에서 심사위원들이 내려와 심사를 벌인후 합격을 통지합니다.저 같은 경우는 통지서를 받지 못해 남포시예술단에서 1년간 활약하다 만수대예술단으로 옮겼습니다.
-중앙예술단체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 모란봉예술단, 용화(영화) 및 방송예술단, 평양예술단, 조선인민군협주단, 안전부협주단등 7개가 있습니다. 문제는 1년 12달 각단체에게 주어진 한 과업(작품)만 공연을 하며 창작가극은 금지됩니다. 꽃파는처녀 피바다 가극 금강산의 노래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히 피바다 가극은 20년 가까이 공연되고 있는 최장수 과업(작품) 입니다.
-예술학교는 출신 성분이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출신성분은 아주 까다롭게 따지는 편은 아닙니다. 안면주의(친분관계)가 많이작용합니다. 춤적인 기량 보다는 인물, 체격등 신체적인 조건을 우선시 하며 뇌물도 큰 몫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김일성종합대학등은 출신성분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외국에 드나들 기회가 많은 예술인들이 상대적으로 반체제 성향이 강하지 않은가요.
▲마음대로(겉으로) 표현하기가 힘들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외국 공연에 나갈때 호텔에서 외출할 때 속옷은 빨아서 감춰두었다가 돌아와서 말리라는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속옷 품질이 워낙 안좋은 것이 알려질까봐 그런 것이지요. 외국 상점을 쇼핑하면서 좋은 것 보면서안느낄수 있겠습니까.
-주로 무엇을 구입하는지.
▲적은 돈 가지고 많이 살 수 있는 속옷등 눅은 것(싼것)을 많이 삽니다. 한때는 모스크바에 가면 북한돈 10전짜리 딸기비누 를 선물용으로 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습니다. 일반 주민들은 출판물은 물론 TV등 볼거리가 전혀없어 생필품등에는 아예 관심을 갖지 못합니다.
-월북무용가 최승희씨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유명했다는 얘기를 많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길을 잘못들어 반동분자로 찍혔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북한 무용계는 최승희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최승희무용연구소 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은적이 있습니다. 피바다가극단의 김해춘(남)등 제자들중에 유명 안무가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창작활동은 보장되는가.
▲배우들이 자체적으로 하는 것은 없습니다. 제한된 범위내에서 창작과제가 주어지지요. 그러나 이 경우도 김정일의 검열공연(비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안무가들은 항상 긴장합니다. 만약 통과가 안되면 비판사업 을 받기 때문입니다.방청객들이 비판하는 청화사업 이 실시되는데 결과에 따라 10명중 1명꼴로 혁명화(탄광이나 생산공장에 가는 것) 사업에 보내집니다. 약한 경우에는 무보수노동, 출연금지등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북한의 종교에 대해 설명해 주시지요.
▲북한 주민들은 종교 자체를 모르고 생활합니다. 오직 김일성밖에 모릅니다.최근에는 교회가 세워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일반인들이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절이 있다는 얘기는 못들어봤고 교회는 가보지 않아서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광주사건을 소재로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에서 남자주인공의 여자친구가 교회를 찾아 아기를 구해달라 고 기도하는 장면은 본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온 북송동포들의 생활상은.
▲출신 성분으로 따지면 가장 미움받던 사람들이었으나 지금은 가장 살판난 세상을 만난 것으로 부러움과 시기를 함께 받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김일성, 김정일을 주제로 공연하는 일호행사 에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외화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귀국자들부터 때려부숴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들에 대한 일반 주민들의 원성은 대단합니다.
-교육열은 어떻습니까.
▲북한도 같은 민족 아닙니까. 자식을 위해 공부 잘 시키겠다는 열의는 남한과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남한도 영국과는 하늘과 땅 차이를 느낍니다. 영국에서 유람식으로(부담없이) 다니다 남한에 와서는 학원을 몇개씩 다녀야 하니까 애들은 물론 저도 마음의 부담이 큽니다. 우리 애들도 꼭 저렇게 해야 되는가 라는 생각이 들면 남들처럼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도 하지만 실제로 닥치고 보니까 마음먹은 대로 잘 안돼요. 지금 큰 애는 미술학원, 작은애는 피아노학원에만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애인 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한에는 남자들이 외도하는 것보다 여자들이 외로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웃음). 북한에서는 불륜( 좋아한다로 표현)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퇴근후 이성친구를 만나 산보도 하고 곧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집안일만 하는 전업주부에 만족하는지요.
▲지난 86년 결혼한 후 무용을 그만두고 집에서 가정주부 일만 전념할 때는 처음에는 미칠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해보고 싶은 것은 많아요. 컴퓨터, 방송일등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고 일하고 싶은 욕망도 듭니다. 그러나 애들이 공부하는 것이 제 궤도에올라간 후에 적극 모색해보겠습니다. 애들 공부시키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내생각대로 지도를 해서 학교에 보내면 틀린 경우가 아직까지 많아 속상합니다.
신씨는 큰 아들 창혁이의 생일이라 친구들을 초대했다며 연신 시계를 쳐다봤다. 북한에서는 부모들이 애들 생일날 이팝(이밥:쌀밥을 일컬음), 콩나물을 차려주는 것이 별식 이라고 귀띔하는 신씨는 아들이 좋아하는 양념통닭, 과일,피자등을 준비하겠다 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영희씨 약력
▲95년 12월12일 귀순 ▲78년 9월 남포예술학원(2년), 평성예술학원 무용학과졸업 ▲78년 9월~81년 8월 남포예술단 피바다 가극단 무용배우 ▲81년 8월~88년 12월 만수대 예술단 무용배우 ▲85년 9월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방문시 예술단원 일원으로 방한(訪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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