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 내가 니한테 카지 누구한테 카겠노. 일본놈들 더러운 기금인가 그거는절대 받아서는 안된데이-. 내 좀 살려도. 꼭 좀 살려도』
17세 꽃다운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로 남태평양 버마전선에 끌려갔던 문옥주할머니(72.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비둘기아파트 102동 1206호)가 26일 새벽 대구동산병원에서 한많은 일생을 마감했다.
일제의 정신대 만행을 폭로한 대구의 첫 증언자였던 고 문옥주할머니는 평생결혼도 못하고 피붙이라고는 없이 파출부와 보따리 장사로 번 돈을 약값으로써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서푼어치 배상을 거부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받아내기 위한 노력을 늦추지않았던 조선의 딸이었다.
『간호요원 모집한다는데 속아서 위안부로 끌려갔다』고 정신대 신고의 전화에고발했던 문할머니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을 상대하면서 생긴 후유증에 평생시달려야했다. 조선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야했던 그는 해방이 된 뒤 고향에돌아와서도 주위의 냉대속에 숨어서 수십년이상 살아야했다.
『정부가 치유책은 커녕 부끄러운 일이라며 숨기기에 급급했고 일본은 말로때어버리려고 한다』면서 유엔 인권위원회에 정신대문제를 상정하는데 앞장섰던문할머니는 최후의 순간까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없는 민간 기금 수령을 거부했다.
양아들 나민식씨 집에서 함께 살았던 문할머니는 지난 6월에 넘어진뒤 다리뼈를 다쳐서 거동조차 못했었다.
며칠전 집으로 찾아갔다가 한맺힌 마지막 유언을 듣게 된 같은 처지의 이용수할머니는 한번 피지도 못하고 짓밟힌 청춘의아픔을 딛고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문할머니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게 뜻을 살려가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정신대 할머니는 6명으로 줄어들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대표 윤정옥)와 대구여성회(회장 김난경) 정신대대책위원회는 문할머니의 장례식을 28일 오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구여성회가 공동 주관하는 사회장으로 지내기로 했다. 빈소는 동산병원 영안실(250-7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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