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자문화의 맥 가야토기

1천5백년을 흘러온 도자문화의 맥으로 젖어드는 길은 경북 고령에서부터 시작된다. 대구에서 88고속도로를 따라 맨눈으론 현란하기까지 한 단풍을 벗삼아 만추(晩秋)가도를 40여분 내달으면 모습을 드러내는 곳,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

고령요(高靈窯) 라 적힌 팻말이 객(客)을 반긴다. 지난 91년부터 고령에 정착, 가야토기 재현작업에 푹 빠져있는 도예가 백영규씨(58)의 2백평 남짓한 작업터. 인근 운산동에서 옮겨와 지난달 19일 새단장을 끝내고 문을 열었다.

경북 금릉, 문경 등지를 돌며 40여년간 전통 도자기를 어루만져온 50대 도공의 손은 가끔 고려다완과 전통다기를 빚을 때를 제외하곤 6년째 가야토기에 머물고 있다.

가야토기는 고대 가야인들이 직접 터득한 기술로 빚었던 모래같이 거친 질감에 투박하고 소박한멋이 돋보이는 질그릇. 불의 분위기 가 도질점토에 제대로 스며들지않는 가스.기름가마는 고유의적갈색을 변색시켜 옛 멋을 되살리는 데는 부적합하다. 당연히 백씨도 전통가마를 고집한다.최근 자신의 호 도정(陶靜) 을 아예 흙사람(土人) 으로 바꿔버린 백씨는 요즘 흙투성이로도 일할 맛이 난다. 그의 고령요가 은은하고 자연미 넘치는 가야토기 재현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월 고령군에 의해 가야토기 특산단지로 지정됐기 때문. 가마안으로 장작을 밀어넣는 그의 손이유난히 미더워 보인다.

대가야의 혼이 서린 고장 고령엔 고령요 외에도 명도요, 내곡도자기, 수암도예, 백산도요등 분청사기와 생활도자기를 굽는 제법 규모있는 5~6개소의 가마가 성산면, 고령읍, 쌍림면등에 각기 흩어져 있다.

그러나 물레성형, 전통가마등 수작업을 고수하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그나마 현재 남아있는 곳도 7~8년전에 비하면 3분의 1가량밖에 안된다는 것이 도예가들의 얘기.

가야대학 표지판을 뒤로 하고 합천 방면으로 20분 가량 달리면 경남.북을 연결하는 좁다란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석사교. 다리 건너는 합천군이다.

합천 또한 예부터 고령과 함께 도예 성지로 쌍벽을 이뤄온 곳.

강파도원, 삼성요, 승완도자기, 청원도예등 가야면 일대 10여곳의 생활도자기 가마와 수년전부터율곡.적중면 일대에 들어서기 시작한 미대출신자들의 공방 5~6곳이 일반 산업도자기나 소규모 수공 작품을 만들어내며 도요지로서의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소규모 공방이 조금 더 늘 것이란 소식이지만 원체 전통도예 제작공정이 까다롭고 전승 자체에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안아야 하는데다 수년전부터는 경기도 여주와 경남 김해의 기계화된 공정시스템하에 제작된 상품(商品) 들이 밀려드는 탓에 전통 가마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춘 것이옥에 티 다.

왠지 흙냄새가 그리운 시대, 도자문화의 보존과 재현을 기다리는 옛 도공의 숨결이 가을 햇살속에 놓여진 도편(陶片)에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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