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김규원

"막가는 사회"

지난 여름의 연세대사태와 관련하여 한총련의 핵심그룹에 대한 검거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모양이다. 그리고 잠수함으로 동해쪽에 침투한 공비들에 대한 소탕작전도 50여일 만에 마감되었다. 이두가지 사안은 공통적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의 고귀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계기를마련해 주었다고 본다.

말할 것도 없이,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은 사회성원들간의 합의도출을 위한 공정한 절차와 합리적인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자유민주 사회에서의 공권력 사용은 법이 정한 테두리안에서이루어져야만이 그 합법성과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이른바 탈법자(脫法者)와 초법자(超法者)처럼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은 누구든지 법적 제재뿐만 아니라 도덕적 비난까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뻔한 사실들을 우리 교육기관에서는 반복해서 가르치고 이다.

적법성 문제 중시를

특히 자율과 안정을 필요로 하는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는 절차와 관행을 무척 중시하고 있다.그런만큼, 어떤 명분이든간에 또 어떤 집단에 의해서도 폭력이 난무할 수 있는 곳은 결코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배학생을 검속한다는 구실로 사전 양해나 영장제시도 없이 대학구내에 경찰이 들어와서 물리적 힘을 행사하는 일이 최근들어 반복되었다. 심지어 1년이 넘게 준비한 음악회를 위해 예행연습을 하던 여학생들까지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난타하여 예술행사 자체를 무산시킨 일은 아무래도 공권력을 빙자한 폭력행사로 밖에 볼수 없다. 그 당시 경찰의 눈에는 아무것도뵈는게 없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작태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전매품으로 간주하여 문민정부라면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청산해야 마땅한 것이다. 예컨대, 전직 대통령들을 법정에 세운다고 해서 역사가 제대로 서지는 않는다. 바로 폭력과 위협을 통해 정권을 잡고 유지하던 그 구조적 모순고리를 먼저 끊어버리지 않고서는 그들을 심판할 자격조차 의심받는다고 본다. 위헌에 기초한 보복논리라고 우겨대는판에 엄정한 법의 집행을 기하려면 매사에 적법성의 문제를 결코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될줄 안다.

군사독재정권이나 북한공산체제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끝까지 저항해왔던 이유는 한결같이 저들의 목표달성을 위해 눈에 뵈는게 없이 폭력의 최고형태인 무력행사도 불사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있다. 아무리 숭고한 명분을 주장한다 해도 요즘 일반인들이 한총련에 대해서 곱지않은 시선을보내는 것도 같은 이치라 본다.

눈 멀었으니 귀로써

한편, 공비소탕작전이 진행되던 시기에 알려진 일들을 살펴보면 좀 다른 의미에서 눈에 뵈는게없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것 같다. 무기중개상의 유혹에 넘어간 국방부장관,국감자리를 비운채 떠돈 국회의원, 공비에게 감시.포위망을 뚫린 장병, 호화사치행각을 일삼은 해외여행객, 갖은 수단으로 대학을 사유화(私有化)하려는 총장, 적자타령하면서 사욕채운 시내버스사업자와 그를 도운 관련 공무원, 골프장에서 일과시간을 보낸 공직자, 이들 모두다 눈에 뵈는게없는 사람들이다.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돈많은 사람을 시기하면서 급기야 흉악한 범행을 저지른 막가파 도또다른 의미에서 눈에 뵈는게 없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이와같이 눈에 뵈는게 없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한마디로 말해 막가는 사회이다.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너나할것없이 공멸(共滅)하고말 것이다. 우리 다함께 살아남기 위해서 눈에 뵈는게 없는 사람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 힘과돈이 좀 있다고 일반 국민들을 눈안에 두지 않은 사람들만 골라내어 막가파에게 넘기는 일이 막가는 사회로 가는 길을 피하는 최상책이라는 소리를, 눈이 멀었으니, 귀로써 듣도록 하자.〈경북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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