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청동기초기단계에 정치세력 출현

"신라국가형성기 대구사회 동향"대구지역은 청동기초기단계에 정치세력이 출현하기 시작했으며 4개단위로 분화된 읍락중 달구벌이 정치적 중심지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고대사연구회가 최근 펴낸 한국고대사논총8편에서 주보돈교수(경북대 사학과)는 신라국가형성기 대구사회의 동향 이란 논문을 통해 신천등 천변에 산재하는 지석묘의 존재로 보아 늦어도청동기초기단계에 정치세력이 출현하기 시작하였음이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주교수는 또 5, 6세기 고분분포나 후기의 문헌사료를 토대로 분석할 때 대구지역은 달구벌(達句伐), 팔거리(八居里), 설화(舌火), 다사지(多斯只)의 4개 읍락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정치적인 중심지는 달구벌이었다고 밝혔다.

또 달구벌지역은 고분군 분포양상으로 살펴볼때 비산.내당동, 대명동, 복현동, 두산.읍동등 크게 4개지역으로 나뉘어 적어도 6개이상의 자연촌을 형성하고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들 고분군은 군(群)의 밀집형태가 심한 편차를 보이고 있으며 수량과 규모면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러한 사실은 자연촌이라 하더라도 계급이나 가계분화의 정도가 한결같이않았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풀이했다.

주교수는 달구벌에 형성된 자연촌이 정치적.경제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영향력에 따라 각기 다른 외위를 지급받았으며 이것이 향후 군현제(郡縣制)가 실시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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