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柳宗鎬 칼럼

"敎師가 따로없다"

서양쪽에서 오랫동안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알렉산더대왕은 성품이 교만하고 잔혹하며 미신을 숭상했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부왕(父王)이 외국을 정복할 때마다 자기가 정복할 몫이 없어진다며한탄했다고 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10대초의 알렉산더를 3년간 가정교사의 자격으로 가르쳤다. 고전 고대의 대학자이자 사상가였던 아리스토텔레스도 전세계를 정복하고 싶어한 알렉산더의 광기(狂氣)를 고쳐주지는 못하였다.

로마에 불을 지른 황제 네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견인(堅忍)주의자로 유명하여 셰익스피어에게도 영향을 끼친 세네카는 11세난 네로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세네카의 50대초의 일이었다. 네로의횡포가 심해지면서 세네카는 네로의 눈밖에 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반역죄의 혐의로 네로의명령으로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살이 허용된 것은 전공(前功)에 대한 고려때문이었다.학교교육만 믿어서야

학생과 관련된 큰 사건이 터져 사회적 관심이 쏠리게 될때마다 도대체 학교나 대학 교사들은 무엇들을 하는게냐는 투의 농담반 진담반의 공격을 사석에서 듣고는 한다. 그럴때마다 나역시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리스토텔레스나 세네카같이 뛰어난 철학자나 웅변가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제자라면서 요즘같은 대중교육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응수한다. 사실 학교교육은 지식 내지는 기술교육이 주종이요 인성교육이나 윤리교육은 크게 보아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이 담당하는 몫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교육이 인성교육을 등한시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것이 여러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세살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쪽 속담이 있다. 현대의 정신분석학은 사람의 성격이 대체로 생후 3년사이에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가정교육 혹은 교육단위로서의 가정환경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세속 지혜요 관찰이다. 한편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면서 자아를 형성하는 법인데이 때 사회경험이라는 것은 막중한 형성력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가정, 학교, 사회라는 교육적 환경에서 자기를 만들고 자아를 형성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 세가지 교육적 환경은 직접적으로또 복합적으로 인간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교육주체는 가정.사회

요즘 청소년에 관계되는 충격적인 소식이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고등학교에 조직폭력배가공공연히 발호하면서 사회 조직폭력배를 무색케 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어린 학생사이에서도 약자 골려주기가 유행하여 가령 심장병 어린이를 박해했다는 등속의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피해자가 엄청나게 많지만 보복이 두려워서 말도 못한다고 한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넘겨버리기에는 사태가 심각하다. 순진한 어린이 사이에 있음직한 소박한 정의감이나 인정도 메말라간다는 것이 현장 교육자의 증언이다. 도대체 어느 한구석 안심할 만한 곳이 없다. 총체적 불안정성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서있는 자리가 크고 중요한 자리라면 그만큼 책임도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구 탓하기가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대체해서는 안된다. 가정폭력이 난무하고 욕설이 상습적 언어가 되어 있는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나 결손가정의 불안한 어린이에게 올곧은 품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른은 청소년의 거울

그러한 의미에서 무책임한 성개방 풍조나 성적 조숙을 강요하는 사회분위기는 결국 사회의 황폐화에 기여할 공산이 크다. 폭력에 대한 교사나 사회의 무관심을 보고 자라난 청소년들에게 정의감을 기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사회적 기여도 크고 어제까지 사회의 지도자로 대우받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몰염치한 위인으로 전락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는 일이 거의 매일처럼대서특필되는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누구를 모형으로 해서 자아를 형성할 것인가. 성인들은 모두교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처신해야 할 것이다.

〈연세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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