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문화의 본고장 하동화개골

우리나라 차문화의 본고장 경남하동화개골.구마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내서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진입, 광양길목으로 빠져나오면 수묵화풍경처럼 섬진강줄기가 길게 이어진다.

도로공사를 한답시고 모래채취가 한창인 하동포구. 굴삭기를 동원한 인간의 오만한 손으로 훼손되고있는 섬진강의 정겨운 풍광이 안쓰럽다.

전라도 구례로 향하는 국도를 굽이굽이 질러 가다보면 아련한 하동읍이 멀리 보이고 이윽고 화개초입길이 눈앞에 다가선다.

화개골은 탑리에서 시작된다. 탑리는 가수 조영남이 부른 대중가요 화개장터 로 유명세를 치른곳이다.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 마을 구례사람이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친다는 화개장터. 숯 산나물약초 나무그릇같은 이채로운 산중물산이 풍성하게 나왔다는 이 장터는 요란한 식당간판만 즐비할뿐 산간장터의 토속성은 이미 잃어버린듯 하다. 그러나 어쩌랴. 산골이 옛 정취 그대로 있길 바라는 건 온갖 편리를 다 누려온 도시인의 주제넘은 욕심일지도 모르는 일.

화개장터의 실망을 접어두고나면 그래도 아직은 때묻지 않은 시골풍경이 펼쳐진다. 그중에서도눈길을 끄는 것은 푸르디 푸른 대나무와 산비탈 곳곳에 올망졸망한 차밭.

쌍계사 들목 가로수는 벚나무단풍이 찬란하다. 화개동구 십리 벚꽃길로 알려진 곳. 김동리의 단편소설 역마 에서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는 시오리가 좋은 길이라 해도 굽이굽이 벌어진 물과돌과 장려한 풍경은 언제 보아도 길멀미를 내지 않게 하였다 라고 소개되기도 한곳.봄철 만개한 꽃으로 사랑받는 벚나무가 가을에는 무게있는 붉은 잎으로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 차문화의 기원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탑리에서 쌍계사로 가는 산과 들 언덕배기와 칠불사(이전 칠불암)에 이르는 골짜기마다 즐비한 차밭골. 이일대 12㎞가량의 차밭골은 습기가많고 무덥되 시원스런 바람이 쉼없이 불어와 무더위를 씻어주고 아침에는 햇빛을 잘 받고 낮에는그림자가 지는 차나무성장을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차는 지금으로부터 1천1백여년전인 828년(신라흥덕왕3년)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종자를 가져와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어 성행하게 되었다.

그 이전인 7세기 전반 신라 선덕여왕때부터 차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본격적인 차보급은 화개골에차종자가 뿌리를 내리면서부터라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쌍계사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꺾다보면 야트막한 산비탈에 단칸초가집채만한 바위가 두개 놓여있고 키가 쭉쭉뻗은 대나무숲이 주위를 포근히 감싼 차시배지(始培地)가 있다. 군청에서는 최근 이곳에 시배지비를 세워 매년 차의 날인 5월25일 행사를 치르고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지리산기슭, 정약용 저서에는 하동군 화개동 언저리라고만 쓰여져 정확한 시배지는 알수없고 다만 화개차밭골일대가 우리나라 차의 원류지라는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다.

때마침 차나무꽃이 활짝 피어있다. 무명천을 연상케하는 희디흰 꽃. 5개 꽃잎에 노란 수술이 올라와 진한 향기가 코끝에 진동한다. 쌍계사입구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한 여인네는 이 내음을 아이보리 향 이라 명명했다.

산비탈 지천에 널린 차밭을 유심히 살펴보면 대개가 유사한 공통점을 갖고있다. 차밭주위에는 반드시 대나무가 군락을 이뤄 키작은 차나무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같은 조화를 화개골 사람들은 찰떡 궁합 이라 표현하고있다.

수직으로 곧은 뿌리를 뻗은 차나무와 좌우횡렬로 뿌리가 난마처럼 얽힌 대나무가 공생하는 원리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표현이다. 게다가 차나무는 대나무 이슬을 먹고 자란다지 않는가.다시 길을 돌아 쌍계사입구에 들어 팍팍한 고갯길을 올라가다보면 턱밑에 숨이 차 쉬고싶은 지점에 김대렴공 차시배 추원비가 자리잡고있다.

지난 81년 한국다인협회가 이땅에 차를 퍼뜨린 신라사람 김대렴을 추모하기위해 만든 기념비다.쌍계사를 내려와 신흥방면으로 길을 잡아 5㎞가량 산고개를 올라가면 반야봉에 칠불사가 산아래를 내려다보고있다.

이곳 칠불사 아자방(亞字房)에서 다성 초의선사는 1828년(순조 28년) 다신전(茶神傳)을 저술, 유명한 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의 기초를 마련했다. 우리나라 차문화를 선(禪)과 접목, 드높은 풍류의경지를 개척한 초의.

초의선사의 체취는 아자방에 숨결로 남아있다. 한번 장작 불을 때면 60여일간 온기가 남아있다는아자방은 세계미술사에도 기록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특이한 형태의 온돌구조로 만들어져있다.칠불사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화개 차밭골, 좁은 땅뙈기 곳곳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키작은차나무에는 끈질긴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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