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40년동안 한국생활을 하고 남은 것은 다 헤진 와이셔츠와 성한데 없이기운 바지·뒷굽이 다 닳아버린 구두· 바느질로 떼워진 가방 뿐.
37세에 한국 땅을 밟아 대구에 머물며 수 많은 제자들에게 사랑과 지식을 베풀어 온 팔순의 아더조셉 맥타가트씨(82·영남대 초빙교수).
무릎 질환으로 지팡이에 의지하고 세월의 위세에 꺾여 목소리마저 약간 떨고있는 그는 내년 8월이 두렵기만 하다. 영남대와의 계약이 끝나 한국을 떠나야 할 처지기 때문이다."이제 더이상 제자들에게 줄게 없어 떠나게 됐다"면서도 고향에 돌아간다는 기쁨보다 정든 대구와 수 많은 제자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오랫동안 비워 둔 고향에는 가족도 친구도 없다. 고향가면 오히려 이방인 취급을 받을 처지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많은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노교수의 진정어린 속마음이 가슴 찡하게 전해온다.
한국에서의 '봉사하는 삶'을 마감하는 그는 미국 인디애나로 귀향, 짬을 내 1년에 1번쯤 한국을찾아 제자들을 만나보고 싶어하지만 그의 꿈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
그가 한국 학생들과 사제관계를 맺은 것은 전쟁이 끝나가던 지난 53년 무렵, 대구와의 인연은56년 대구미문화원장으로 취임, 당시 경북대·청구대·대구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였다.76년 영남대 교수가 된 맥교수는 자신이 받은 급여를 몽땅 털어 현재까지 20년동안 가난한 학생들(1백20명)에게 우정장학금을 지급해 오고있다.
궁핍한 환경에서 자라 기계공장에 취직, 4년간 일해 번돈으로 퍼듀대·코널대·스탠퍼드대로 진학(교육학박사)한 그가 한국교육에 생애를 바치게 된 것은 전쟁 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배우고자 하는 한국 학생들의 열의 때문이었다.
맥교수는 그동안 제자들의 취직자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으며 입사 면접때 자신의 옷을입혀 서울로 보내기도 했다.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장학금과 생활비·옷가지를 마련해 주고 투병중인 제자의 수술비와 생활비 지원은 물론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약까지 외국에서 구입, 보내주는 등 가슴 뭉클한 사랑을 실천했다.
오늘도 14평짜리 교수아파트를 나서 나무지팡이에 몸을 지탱하며 시내버스에 몸을 싣는 노교수는돼지갈비와 소주·콩국수를 무척 좋아하는 우리의 이웃 할아버지다.
〈黃載盛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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