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지를 찾아서(9)-천주교 한티순교묘역

팔공산 기슭의 천주교신자 순교터 한티성지.

대구시 동구 불로동에서 팔공산순환도로를 타고 파계사입구에 이르러 왼쪽을 돌아 좌우로 굽이치는 고갯길을 오르면 보이는 가산산성. 가산산성 오르기 바로 직전 한티순교성지라 쓴 거대한 돌표지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먼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한티순교묘역을 만난다.산은 이미 가을이 지고있다. 묘역을 오르는 길은 떡갈나무 낙엽이 무성하고 빛바랜 잔디는 겨울의 적막을 예고해주고있다.

37명의 순교자들이 잠들어있는 한티성지. 각 무덤마다 십자가로 된 돌비석을 세워 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대부분이 이름조차 알기힘든 무명의 순교자들.

좁다란 오솔길을 따라 번호표지를 무덤앞에 세워 놓았다.

한티마을은 1866년 병인박해 2년뒤인 1868년 배교를 거부하는 신자 30여명이 그자리서 한꺼번에순교를 당했다. 졸지의 참변으로 일부는 그자리에 묻히기도했고 또 다른 일부는 발굴사업을 통해이곳에 이장되기도 했다. 때문에 대부분 묘지는 그흔한 비명조차없이 번호로만 매겨져있는 것이다.

20번째 무명 순교자 묘지에는 가지가 다보록하게 많이 퍼진 소나무가 바로 무덤위에 자라 고난과역경속에 살았던 당시의 아픔을 되새기게한다.

험악한 이곳 산중턱 한티에 언제부터 신자들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있지 않다. 을해박해(1815년)와 정해박해(1827년)후 대구감옥에 갇힌 신자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신자가족들이 모여 신자촌을 이루게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마을이름도 큰 재밑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한티라 했다고 전해진다. 68년이후 묘소발굴과 성전건립사업이 시작되었으며 84년부터 천주교대구대교구주관으로 성지개발이 진행됐다. 〈柳承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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