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법 개정안 국회통과 어떻게

정부의 노동법개정안이 이제 국회로 넘어왔다. 노동자와 사용자 측의 이견을 미처 해소하지도 않았고 양측 주장을 다 수렴하지도 못한 채 확정된 정부안이어서 국회는 이의 처리로 골머리를 앓을 전망이다.

사실 여야정치권은 지금까지 대통령 직속의 노사관계개혁위와 정부측이 이 문제로 고심하고 있을때 팔짱을 끼고 제3자의 입장에 서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정기국회 폐회를 1주일앞두고 국회로 넘어온 법안을 처리해 달라는 정부의 태도가 못마땅하다.

어쨌든 제도개선법안과 예산안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국회는 이를 처리하더라도 또 하나의 골칫거리를 떠안게 되는 셈이다. 때문에 내년초 임시국회 처리라는 전망이 강하다.그리고 무엇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노동자나 사용자 양측 가운데 일방적으로 어느 쪽의 편을들 수도 없다는 어정쩡한 입장도 연내처리 불가의 중요한 이유다. 또 현재 여야동수로 돼있는 국회 노동환경위의 여야의원 분포도 강행처리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의 중요한 근거다. 서청원신한국당 원내총무는 "강행처리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신한국당은 3일과 4일 노동법과 관련한 어떤 논평도 내지 않았다. 다만 김영삼대통령의 역점 추진사항인 만큼 원안통과 원칙정도만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여야간의 물리적 충돌을 통한통과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3일밤 심야 노동당정협의에서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입장정리를 못하고 있는 것은 야당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정기국회 막바지에 개정안을 내놓은 정부측의 의도를 비난하는 수준이다.

국민회의는 추후 당의 공식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정동영대변인은 "부분적으로 고민한 흔적은있지만 노사양측 누구도 만족할 수 없고 우리가 주장한 국제수준에도 미흡하다"고 평했다. 방용석의원은 "정부가 생색만 내고 책임을 국회에 떠 넘기려 한다"고 비난했다.

자민련의 허남훈정책위의장도 "노상양쪽의 요구를 한꺼번에 모두 반영하는 입법을 회기내 마치는 것은 무리"라며 시간적 여유를 주장했다. 안택수대변인도 "노사양측 주장을 합성해 놓은 개정안이 과연 노동현장에서 조화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졸속처리 불가를 선언했다.한편 민주당의 권오을대변인은 "노동계는 쟁취하려고만 하지 말고 사측도 강경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원론만 밝힌 채 개정안에 대한 입장 정리를 하지 않았다.

한편 청와대는 3일 확정된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미흡하지만 대체로 합리적이라는 반응이다.김영삼대통령의 개혁의지를 바탕으로 그동안 힘겨운 개정작업을 진행,반전을 거듭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라도 정부안을 확정했다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긍정적 평가다.

복수노조 허용문제와 노조전임자 무임금제, 대체근로 범위등 쟁점사안을 놓고 마지막까지 큰 시각차를 노정했던 사회복지수석실과 경제수석실의 분위기는장거리를 달려온 주자들처럼 땀을 식히며 가쁜 숨을 고르는 모습.

줄곧 개정작업을 주도해온 사회복지수석실은 복수노조, 교원 단결권, 제3자개입금지,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등 국제적으로 비난받았던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노동기본권 신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렇지만 공무원 단결권 문제를 2차 개혁과제로 넘기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미흡했다고 지적.경제수석실은 기업부담 완화와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정부안은 상당히 미흡하며, 국제기준에 비해 여전히 기업부담이 과도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대체근로제, 변형근로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등 재계가 주장해온 부분을 도입해 한걸음 나아간 측면이 있다고 평가.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정부측 노동법개정안을 마무리지은 총리실은 일단 한숨을 돌린 분위기다.노동계의 반발이 거세고 재계마저 성에 덜 찬 듯 볼멘 소리가 나오지만 이미 예견됐던 것인 만큼담담하다.

지난달 10일 이수성(李壽成)국무총리가 자원하다시피해서 노동법개정이 총리실로 넘어온 이후 실무를 담당했던 김용진총리실행정조정실장이 3일, 환한 얼굴로 그간의 논의과정을 회고할 만큼 손을 털었다는 점에서 일단은 가벼운 마음이다.

그러나 총리실은 이번 개정안이 상충되는 이해를 가진 노사 모두를 만족시키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했던 만큼 향후 사회적으로 번질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이총리는 비서실에서 마련한 대국민담화문 초안을 거의 다 뜯어고쳐 손수 쓰다시피 할 정도로 노사와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데 진력을 기울였다.

노동계의 양대산맥인 한국노총과 민노총이 총파업투쟁불사 방침을 내세운데 대해 총리실의 입장은 단호하다. "노동계의 반발을 염두에 두거나 재계의 반대를 고려하고 개정법안을 만들지는 않았다. 정부는 향후 벌어질 상황에 대해 법에 의거 대응할 뿐이다"고 김실장은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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