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등-철없는 소녀

"옆방 부부들 사는 걸 보니 너무 부러워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어요"

10일 오후 북부경찰서 형사계에는 앳되 보이는 10대 소녀 하나가 고개를 숙인채 눈물을 떨구고있었다. 특수절도 피의자 이모양(17). 범죄수법도 대담해 옆방자물쇠를 뜯고 이삿짐센터 차를 불러 가재도구를 몽땅 털었다.

북부경찰서 정홍구형사가 피해자 박모씨(22)로부터 신고를 받은 것은 지난 7일밤. 현장조사를 하던 정형사는 기가 막혔다. 비디오, 오디오 등 가전제품은 물론 옷장과 무스탕, 세무잠바, 코트 등옷가지, 침대 매트리스까지 모조리 훔쳐간 것.

정형사는 이내 옆방에 살던 이양의 소행으로 판단, 이삿짐센터 등을 탐문한 끝에 이양을 붙잡았다.

그러나 이양을 조사하던 정형사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여동생뻘인 이양이 너무나 딱해 보였던것. 이양은 여고를 중퇴하고 지난달초까지 공장경리로 8개월여일하다 그만뒀다. 그러나 건축일을하던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할수없이 들어간 곳이 침산2동 자취방. 외로움을 타던 이양은 옆방 젊은 부부와 금새 친해져 자주 놀러가게 됐고 그들의 삶은 너무나 따뜻해 보였다. 10대 소녀의 철없는 시샘이 남의 집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정형사가 찾아간이양의 새 자취방은 훔쳐간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어 어엿한 살림방이나 다름없었다."요즘 10대들처럼 쉽게 유흥가로 빠지지 않고 직장을 구하는 등 생각이 건전했습니다. 죄는 밉지만 어린 소녀를 범죄자로 만든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밤새 구속영장 신청서류를 들고 고민하던 정형사는 11일 아침 불구속을 건의했으나 '법대로 처리'하라는 지휘를 받고 이날 저녁 이양을구속했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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