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대통령 2명을 동시에 법정에 세운 12·12, 5·18및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은 16일 항소심 선고공판으로 법정 공방의 막을 내렸다.
핵심사건인 12·12, 5·18사건은 특히 5·18특별법 제정과 검찰의 재수사가 시작된 이후 재판과정에 이르기까지 숱한 법리논쟁을 일으켰으며 재판과정에서도 사법사상 유례없는 진기록들을 세우며 국내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들 역사적 사건의 시발점은 지난해 10월19일 당시 민주당 박계동의원이 국회대정부 질문과정에서 '노씨의 비자금 4천억원이 시중은행에 예치돼 있다'고 폭로하면서부터.
대검 중앙수사부가 수사에 착수해 노 전대통령에 대한 2차례 소환조사를 비롯, 대기업 총수등 기업인 40여명이 조사를 받았으며 수사과정에서 노씨가 2천8백여억원의 뇌물을 비롯, 모두 4천1백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확인돼 온국민을 충격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지난해 12월 5일 노씨와 이현우 전청와대 경호실장 등 3명이 구속기소되고 이원조 전의원, 동아그룹 최원석회장, 대우그룹 김우중회장등 자금조성 관련자와 기업총수 등 12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노씨 비자금 사건 수사가 마무리 되어가던 지난해 11월24일 김영삼대통령이 민자당(현신한국당)에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하면서 문민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작업이 본격 개시됐다.5공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5·18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은 6공초인 지난 88년 국회청문회를 통해처음 시도됐다 흐지부지된데 이어 문민정부 출범이후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불기소 처분-특별법 제정-재수사 착수-헌재의 특별법 합헌결정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가능해진 것이었다.'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한 검찰은 수사착수 22일만인 12월21일 전·노씨를 비롯, 황영시·정호용·허화평·이학봉 등 80년 당시 신군부측 핵심 관련자16명을 구속 및 불구속기소했다.
이와는 별도로 검찰은 지난해 12월5일 노씨 비자금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하는 동시에 '전씨 비자금사건 특별수사반'을 편성, 전씨 비자금 및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수사결과 전씨 또한 뇌물 2천1백여억원을 비롯해 모두 7천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확인됐고 전씨와 안현태전청와대 경호실장, 성용욱 전국세청장 등 6명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됐다.방대한 사건기록과 수많은 쟁점을 가지고 9개월여동안 진행된 12·12, 5·18사건 1심과 항소심재판은 사건기록 분량과 공판 횟수와 재판 기간, 증인 숫자 등에 있어 각종 진기록을 세웠다.지난 3월11일 1심 첫공판을 시작으로 숨가쁘게 내달린 이 사건 재판은 1심에서1백68일간 28차례,항소심도 71일간 12차례 공판이 열려 1,2심에 걸쳐 40회라는 단일사건 사상 최대의 공판 횟수를기록했다.
또 1심에서 41명의 증인이 증언했고 항소심에서도 33명이 증인으로 나서 증인숫자도 74명에 달했다.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1심에서는 정승화 전육참총장, 신현확 전국무총리, 노재현 전국방장관, 장태완 전수경사령관, 권정달전보안사 정보처장 등 증인 41명에 대한 신문을 통해 사실관계를 대부분 파악해 내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구속재판기간(6개월)에 쫓겨 신속한 심리를 진행하려던 재판부에 변호인측이 반발, 변호인집단퇴장및 사임, 신청 증인 91명중 50명 무더기 취소, 핵심증인인 최규하 전대통령의 법정 증언불발 등의 흠집을 남겼다.
1심에서 전두환·노태우피고인에게는 사형과 징역 22년6월이, 13명의 피고인에게 각각 징역 10년∼4년이 선고됐고 박준병피고인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편 노씨 비자금사건에서는 12·12, 5·18사건에 병합된 노씨를 제외하고 이현우전청와대 경호실장 등 노씨 측근 3명(징역7년∼3년)과 최원석(동아)·김우중(대우)·장진호(진로)·정태수(한보)등 대기업 총수 4명(징역 2년6월∼2년)에게 실형이, 나머지 7명은 집행유예가 선고됐다.또 전씨 비자금사건에서는 12·12, 5·18사건에 병합된 노씨와 정호용피고인을 제외하고 안현태·성용욱·안무혁피고인에게 징역 4년∼3년이 선고되고 1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12·12, 5·18사건 피고인 16명은 검찰과 피고인측 양측의 항소로 모두 항소심을 받게 됐고 노·전비자금사건의 경우 실형을 받은 피고인들이 항소해 각각 8명과 3명이 항소심을 받았다.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권성부장판사)는 증언을 거부해온 최규하 전대통령을 강제구인 수단까지 동원해 법정에 세웠고 국내에서는 이례적으로 검찰과 변호인의 구두변론을 실시, 7대 핵심쟁점을 심도있게 정리하는 등 마지막 단계의 사실심으로서 진실규명에 힘썼다.검찰과 변호인측이 신청한 증인들이 모두 채택돼 비교적 충실한 심리가 이뤄졌으며 1심의 경험과치밀한 사전 준비를 토대로 양측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 재판절차도 매끄럽게 진행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과 다른 특별한 증인이 없었고 최전대통령으로부터도 실질적인 증언을 이끌어내지 못해 신군부측의 구체적인 내란 및 반란행위 입증을 또다시 역사의 숙제로 남기는 아쉬움을 남겼다.
어쨌든 '명백한 군사반란 및 내란'이라는 검찰측의 주장과 '대통령의 사전 또는 사후 재가에 의한 합법적 조치'라는 변호인측 주장이 첨예하게 맞선채 수많은 쟁점을 가지고 진행된 이 사건은사법부의 2차 판단까지 종결됐다.
이제 지난 81년 신군부측 인사들에 의해 창출된 5공정권의 정통성 문제와 5공정권이 우리 현대사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될지를 결정하게될 사법적 심판과정은 대법원의 마지막 판단을 남겨두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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