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7 선택과 도약-정부의 통일준비

'20××년 3월4일. 대구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생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호씨는 평양에 있는 정보화연구소장 최정우씨의 생일을 맞아 PC통신을 통해 생일축하 메시지를 띄웠다.김씨와 최소장은 컴퓨터관련 국제회의에서 알게된 사이다. 그 회의는 바로'코리안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 이 회의는 1994년에 시작된 것으로 남북한 컴퓨터의 자판배열이 다르고 컴퓨터용어가 상이해 첨단 정보화사회에서 자칫 남북한의 이질화가 고착화 될수 있다는 우려에서 순수 민간차원에서 시작된 통합노력이었다. 회의를 시작한지 2년만인 1996년 자판통일안의 기본틀을 만들었고 이후 통합노력은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진행됐다.

그 결과 '갑작스런' 통일에도 불구하고 가장 혼란을 적게 겪으며 남북간 통합을 이루어낸 모범적인 분야로 꼽히게 된 것이다. 그 모범적 통합의 숨은주역이 바로 김씨와 최소장인 셈이다.그러나 정보화통합 등 몇몇 사례를 제외한 사회적 통합은 한마디로 혼란의 연속이다.우선 언어생활부터가 혼란 그 자체다. 김씨는 오늘 평양에 간단한 편지 한장을 쓰면서도 혹시 한자식 표현으로 박소장에게 불편을 주지 않을까 싶어 한자식표현 풀이사전을 몇번이나 뒤적여야했다.

가상으로 그려본 통일후의 한 모습이다. 우리의 통일준비가 지금의 수준에서 비약적인 도약을 하지 않는다면 상상도 못한 혼란이 펼쳐지리라는 추측이 쉽게 나온다.

통일은 이제 미래의 일이 아니다. 현재진행형으로 준비되어야 할 지금의 과제이다.지난 한해동안에도 김경호(金慶鎬)씨일가 17명이 동토를 탈출한 것을 비롯,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이철수대위(96년 5월23일)와 대간첩작전기간중 귀순한 곽경일중사(96년 10월13일) 등 50명이 남한의 품에 안겼다. 현대판 엑소더스의 전주곡이자 북한 붕괴의 시초라는 분석도 나왔다.현재진행형의 문제로 닥친 통일 대비와 관련 가장 뜨겁게 논의되는 분야는 역시 통일비용문제이다. 지금까지 학계와 민간단체 등에서 이루어진 통일비용논의를 살펴보면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통일비용이 크게 차이가 난다.

비용 산출기준을 북한 소득을 남한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기준으로 삼을경우 비용은 1천2백조원으로까지 치솟는다. 또 통일후에도 남북한 경제를 일정기간 분리시켜 점진적인 통합을 시도할경우 32조원 정도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참고로 독일은 통일후 5년간 4백10조원(민간투자제외)을 투자했으며 2000년까지는 1천조원이 통일비용으로 들어갈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이같은 막대한 비용의 조달방법으로는 통일기금조성, 국채발행, 세금인상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어느 하나 명쾌한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서는남북협력기금으로 2천억원 정도가 조성돼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 정부에서는 명백한 입장표명이 없다. 통일비용과 관련 통일원, 재정경제원, 안기부 등에서 연구 검토를 계속하고 있으며 갑작스런 사태에 대비해 3-4가지 시나리오를 설정, 구체적인비용과 조달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안의 민감성때문에 보안에 붙이고있는 형편이다.

통일준비라고 할 때 비용 다음으로 제기되는 문제가 체제통합방안, 다시 말하면 제도적인 문제이다.

이 분야의 총괄은 역시 통일원이다. 그리고 남북대화의 창구라 할 수 있는 남북대화사무국과 통일교육원이 있으며 연구기관으로 민족통일연구원이 있다.

최근 정부는 통일원의 직제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의 기획관리실 통일정책실 정보분석실 교류협력국 외에 탈북주민지원을 위해 인도지원국을 신설키로 했으며 통일정책실 산하에 통일대비업무를 관장하는 과(課)를 설치한다.

아직 구체적인 통일준비에 관련해서는 걸음마단계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통일이후의 제도통합연구는 민족통일연구원에서 주로 추진해왔다.

연구원은 지난 94년이후 통일한국의 권력구조, 사회복지정책, 정치이념, 국민통합방안 등 일련의연구성과를 내놓았으며 분야별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또 통일원은 이른바 통일일꾼 양성을 위해 올해부터 중앙부처 공무원 7백명을 통일교육원에 위탁교육하고 20여개국에 연구인력을 파견, 통일후 법제도, 토지문제, 경제통합방안 등을 심층연구키로 하는 등 나름대로의 준비책을 내놓고 있다.

체제통합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가 다소 미진하다면 최근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는 탈북자에대한 논의는 어느때보다 심도있게, 그리고 내실있게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정부는 탈북자에 대한 지원을 체계화하고 법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탈북자보호법을 만들었다. 여기에 따라 정부는 올해 수도권에 5백명 수용규모로 탈북자보호시설을 만들며 탈북자는보호소에서 1년, 거주지에서 2년간 보호받게 된다. 탈북자 지원방법으로는 주택무상임대, 정착금과 보로금 지급, 의료보호·생활보호 혜택부여 등이 있으며 북한에서 취득한 각종 자격을 인정하고 공무원으로 임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정부의 통일준비를 한꺼풀 더 벗겨보면 걱정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통일원이 통일일꾼 육성을 위한 사업으로 내놓은 공무원위탁교육도 겨우 4주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을 수료한 공무원이 통일이후 문자 그대로 통일일꾼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고개가 갸웃해 진다.

더욱이 교육인원도 최근 정부가 통일이 될 경우 북한지역의 원활한 행정업무수행을 위해 필요한최소인원으로 추산한 3만5천명과는 비교도 안되는 적은 수이다.

사실 현재의 통일원으로는 이 이상을 기대하는 게 무리라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통일원의 총정원은 5백명을 조금 넘는다. 90여만명에 이르는 전체 공무원중 고작 0.06%%에 지나지 않는다.때문에 이제는 정부 전체가 통일일꾼으로 나서야 한다.

통일원에서만 통일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법무부에서는 통일조국의 법제를 연구하고 내무부에서는 행정조직의 통합을, 교육부에서는 교육제도와 학제의 일원화를, 보건복지부에서는 통일후의 사회복지정책을, 건설교통부에서는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확충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그리고 이 모든 준비에 앞서 우리는 통일비용보다는 분단비용이, 통일로 인한 혼란보다는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비극이 더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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