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7매일신춘문예-시 심사평

즐거운 마음으로 시들을 읽었다. 꽤 많은 작품들이 상당한 수준에 육박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의 마지막 관심에 머물렀던 분은 김현옥, 천병석, 전승 세 사람이었다. 이들은 각기여러편의 작품들을 응모했으며, 그것들은 거의 모두 비슷비슷한 높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확실하게 구별되는 중요한 한가지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세 사람이 서로 다른 개성적 세계를 분명하게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당선의 결정은 우열에 대한 평가의 문제라기보다 차라리 선택의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전승씨의 '봄은 어머니 마디 굵은 손끝으로 온다'는,어머니와 봄, 그것도 농촌 마을과 전통가옥을 중심으로한 풍경을 면밀한 관찰을 통해 내면의 풍경으로 바꾸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정통적 정서에 기반을 둔 서정의 세계다.다른 한편 '소크라테스의 전향'(천병석)과 같은 작품은 이른바 교통지옥이라고 불리는 오늘의 도시문명, 출퇴근시의 혼잡과 같은 일상에 정면으로 머리를 들이댄, 도전성이 매우 강한 작품이다.이 분은 공해문제등 현대사회의 치부와 그 문제점에 발빠른 의식의 회전을 보여주면서 자신만의독특한 시의 어법을 개발하고 있는데, 보다 침착한 성찰을 해나간다면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김현옥씨의 '의자.계단.창문'은 세 편의 작품중 그 완성도가 가장 원만한 경우에 속한다. 물론 사랑과 권태, 그것의 내면화와 자기관찰이라는 메시지가 예리한 비유와 묘사를얻고 있는 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분의 시적 수련과 저력은 만만찮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가운데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예민한 감성의 세계를 시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그것을 단정한 어법 속에 묶어놓는 균형과 절제의 솜씨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의 큰 성공을 기원한다. 아울러 응모한 모든 분들의 새로운 정진을 당부하고 싶다.

黃東奎 〈시인.서울대 교수〉

金柱演 〈문학평론가. 숙명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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