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7매일신춘문예-시 당선소감

불현듯, 정말 불현듯, 이었다, 끊어진 길 위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더, 잠자고 있는 내 누추한 시들을 흔들어 깨워 언제나 견고한 벽으로 버티고 서 있는 세상의 가슴팍으로 날려 보낼 생각이 든 것은. 그리고 나는 그 생각의 손목에 이끌려 한밤중 컴퓨터 앞에 앉아, 오래전에 컴퓨터에 가둬놓았던 시들을 불러내었다. 나에게 불려나온 시들은 너무도 칙칙해 세상에 나가도 별 볼일 없는 것들 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다시 한 번, 마지막, 이란 단어들이 주는 비장함에 기대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참 눈물겹게 아름다운 눈이 세상에 소풍와 있었고, 나도 소풍가는 마음으로 그 눈길을 걸어 우체국으로 향했다. 아직도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고, 다시 한 번 길 떠나보고 길 없으면 그때 절망하자 생각하며.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온 24일 저녁, 막무가내로 쓸쓸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붕붕 뜨는 분위기와 아무 상관 없이 살아온 지 오래. 면역이 되었을 법도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탓으로 그 쓸쓸함이 가중되었는지도. 그랬는데, 그렇게 무겁게 내려앉으며 여행가방이나 풀고 있었는데, 전화가왔다, 당선을 알리는. 사정없이 기뻤다, 혼자. 때로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반전으로 우리를 울고 웃게 한다.

Inside crying, outside laughing. 그 안과 밖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내 시는 떴다 가라앉았다 한다.

언제나 나에게 힘이 되어 주시는 어머니와 나보다 더 기뻐해주는 내 형제들에게 이 작은 기쁨을바친다. 그리고 그러한 기쁨을 허락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 약 력

△1963년 경북 영덕 출생

△경북대 인문대 영어영문학과 대학원 졸

△1993년 '대구문학'신인상

△1994년 영일문학상 시 당선

△현재 대구 상서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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