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독불장군은 못말려

7일 김영삼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그의 임기내 마지막 연두회견이었다. 그러나 1시간 남짓 진행된회견이 끝난 뒤의 심정은 공허함이었다. 알맹이가 없었다. 국민들의 기대를 무색케 하기 충분했다.

이날 회견 어디에도 총파업 대량실직 도산 적자 외채 물가 등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정확한 진단과 구체적 처방은 없었다. 오히려 국정의 책임자인 대통령의 연두회견이 지난 4년간의 겸허한 회고와 반성보다는 국민의 동의를 받기 힘든 치적의 나열이나 찬사였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위기라고 하는 경제문제에 대해 김대통령은 "지금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진단의 핵심이었다. 회견 어디에도 위기극복의 지혜와 자세를 호소하는 장면은 없었다.게다가 김대통령은 취임후 2~3년째 우리 경제는 아주 좋았다고 평가했다. 위기와 불안감에 사로잡혀 이날 뭔가를 기대했던 국민들로서는 좀처럼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여당의 대선후보 선출시기에 대해 김대통령은 92년 자신이 후보 조기선출을 주장할 때는 눈앞의총선전략상 필요했고 그렇게 했으면 (당시 민자당이)압도적 과반수를 획득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를 향해 "그때 상황을 몰라서 하는 얘기"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김대통령 말대로라면 92년은 선거전략상은 물론 경제도 잘되고 나라가 안정돼서 대선이야기가 일찍 나와도 괜찮았고 지금은 나라가 어려워 후보조기 가시화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 또 당시에는 여권에서 흔히 말하는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이 있어도 좋았고 지금은 안된다는 뜻인가.또 경색정국과 관련, 여야영수회담의 성사여부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만나서 할 얘기가 없다"고했다. 야당총재 출신의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 치고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생각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국민 반수가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존재자체를 부인하는 오만함의표출이었다. 김대통령의 힘들었던 야당총재 시절을 기억하는 국민들에게 "모진 시집 산 시어머니가 자기 며느리 더 모진 시집살이시킨다"는 말을 떠 올리게 했다.

김대통령의 7일 회견은 결과적으로 현재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대목은 하나도 없어 한마디로'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가 돼버렸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李東寬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